르네상스 시대에 한 발을 담구다.

르네상스 미술이야기 1 - 미술이 태어난 날
조승연.앤드스튜디오 지음 / 세미콜론 / 2007년 12월

“이 책은 역사적 인물과 배경을 중심으로 소설을 쓴 역사소설이 아니다. 사록에서 이미 알려진 사실을 극화시키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빈 공간에만 상상의 붓으로 몇 명 가상 인물의 삶을 그려 넣었을 뿐이다.” 첫 앞부분 조그마한 귀퉁이에 이 글이 써있다.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낸 글이 아닌가 한다. 소설 같지만 소설과 다르고, 사실 같지만 허구의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가 막 움트는 그 시기를 알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르네상스 시대를 생각하면 한 가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다. 몇 년 전 이 집안에 대한 책을 사놓고 아직도 읽지 않았는데 피렌체의 르네상스의 중심이자 기원지로 만든 그의 모습을 극화시킨 이 책을 읽다보면 인간이 가진 욕망의 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그 야망 덕분에 예술은 더욱 발전하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역시 거슬리는 부분들이 많다. 그런 점을 감안하고 읽다보면 즐겁게 르네상스의 시작을 만나게 된다.

르네상스하면 인본주의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주입식 교육에 힘입어 그런 정보를 얻게 된다. 그 시대 예술가들 하면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을 먼저 생각하지 그 시작의 문을 연 도나텔로나 브루넬레스키나 마사초 등은 비교적 낯선 인물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 세 사람과 코시모 메디치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세 사람이 역사적 인물이라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카테리나라는 가상의 가문 출신으로 만들어진 인물이 있다.

카테리나가 맡은 역은 비중 있다. 이야기의 첫 문과 마지막을 장식하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변화를 마주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시 강한 귀족사회의 일원이었던 그녀가 용병에게 빠져 로맨스를 꿈꾸고 코시모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몰락한 귀족의 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녀와 관련하여 나오는 사건과 대화들은 그 시대의 단면을 가장 잘 나타내어주는데 그때마다 저자는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는다. 또 딱딱해질 수 있는 미술이야기를 부드러운 이야기로 풀어내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부제가 ‘미술이 태어난 날’이다. 이전까지 석공이나 화가가 큰 대우를 받지 못했다. 알베르티가 쓴 한 권의 책(회화록)과 브루넬레스키 등의 몇 명의 탁월한 인물 덕분에 지위가 상승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보면 중세의 예술에 대해 알게 된다. 찬란했던 로마시대의 문화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정치가의 야망과 결합하여 어떠한 상승효과를 만들어내는지 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다. 이어져 나올 이야기에 익숙한 예술가들이 나올 것이기에 더욱 기대된다. 르네상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쉽게 개념을 잡게 도와줄 책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사실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가공의 인물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그 상상의 붓이 어느 정도인지 늘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인물이 있다. 루카 델라 롭비아다. 그 시대에 혁신적인 생각을 하여 돈을 번 조각가다. 지금은 너무 흔한 것이 되었지만 그 당시는 파격적이었다. 벽걸이용 성모상 등을 만든 것이다. 그 당시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예배당이 필요한데 귀족이나 돈 많은 사람들은 개인 예배당을 만들 수 있었지만 서민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에 걸어놓을 수 있는 간이 예배당을 만들었으니 신의 이름과 영광 아래에 산 그들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명성을 남긴 인물이 있는 반면 부를 이룬 인물이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