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가장 싫어하는 과목을 꼽으라고 하면 암기과목이다. 영어도 물론 싫어했다. 영어단어나 숙어들을 외워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이 암기과목으로 생각하는 국사는 나에겐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외운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수없는 반복으로 자동적으로 심어진 것들을 제외하곤 열심히 뭔가를 외운 기억이 없다. 시대의 흐름과 이야기에 더 집중해야 했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점수가 시간 들인 것에 비해 엄청 잘 나온 것을 보면 좋아하긴 한 모양이다. 지금도 물론 좋아한다.

 

왕의 투쟁. 조선을 이야기하면서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빼놓을 수 없다. 성리학의 세계관에 의해 설계되고 건설된 왕조이기에 이 두 권력의 대립은 어쩔 수 없다. 혹자는 조선왕조의 몰락과 부패 등을 왕권이 신권에 눌려 그렇다는 전제하에 글을 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신권이 강했기에 왕조가 500년을 이어왔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어떤 관점으로 역사를 보느냐에 따라 한 왕조를 풀어내는 방식과 인용문구들이 갈라지고 해석도 차이가 나는데 가끔 너무 심해 약간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흥미롭고 많은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에서 다루는 왕들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하다. 세종과 정조는 학문이 뛰어나고 후세에 좋은 평가를 받는 왕들이고,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의 호칭을 받지 못할 정도의 폭군에서 새롭게 역사를 해석하면서 기존의 나쁜 이미지들을 벗어나는 왕들이다. 가끔 독살설이나 음모론에서 대중역사서를 쓴 글을 읽은 적은 있지만 이런 구성으로 된 책은 처음이다. 만약 조선왕조 전체를 다루었다면 기존 서적과 차별되는 점이 없겠지만 이런 비슷하면서 다른 왕들을 묶으면서 시선끌기엔 충분히 성공하였다고 생각한다.

 

신권과 왕권의 대결에서 신권의 승리로 결판난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요즘 읽은 몇 권의 책에서 새로운 시각을 많이 만나게 된다. 기본 관점이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그려진다. 그들이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물들이 단순히 역사서의 반복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와 가정을 가지고 이어진다는 점에서 배우고 생각할 점들이 많다. 목적에 의해 극단적으로 올림을 받고, 분위기에 휩쓸려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이 사라지는 몇몇 글들에 비해 그 성과가 대단하다. 폭군의 이미지로 굳어지던 연산군의 행적을 실록 등의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드리워진 그늘을 치워주고 단순한 개인문제가 아닌 권력투쟁의 소산물이었음을 알려준다. 광해군에 가서는 권력투쟁의 결과 극단적 평가를 받았다는 요즘 학설에 개인적인 성향이나 정책들을 정밀하게 해석해 과장된 거품을 걷어내는데 도움을 준다.

 

세종과 정조는 사실 왕조 초기와 후기에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세종이 왕조의 틀을 세웠다는 설에는 이론이 없고, 그의 아버지인 태종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항상 수위의 자리에 놓이는 인물이자 지금 쓰고 있는 한글을 창제한 분이기에 자동적으로 후광이 비추어진다. 하지만 세종을 역사가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본다면 잘못된 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저자는 수많은 가정을 도입하는데 그의 뛰어난 업적과 성과 때문이 아닌가 한다. 최고의 성군이지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결과를 알기에 아쉬움의 한 표현으로 그런 가정들이 나온 것으로 생각 든다. 또 훈민정음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가슴 한 곳이 약간 아픈 느낌이 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첫 목적을 뛰어넘은 광범위한 사용과 효율은 그에 대한 존경과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요즘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인물은 정조다. 드라마로 소설로 평전으로 만들어져 올 한해 최고의 인물이 아닌가 한다. 조선왕조의 르네상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 시대에 수많은 인물들과 저작물이 나온 것을 보아도 정조 시대는 매력적이다. 왕위에 오르면서 한 첫 말이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극적 표현에서 전율을 느끼게 하고, 독살설 등의 음모론은 대중의 흥미에 맞아 떨어진다. 신권과 왕권이라는 두 세력의 대결과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들은 한 편의 드라마 이상의 재미를 준다. 또 여기서 역사의 가정이 끼워들면서 상상하는 즐거움을 주니 이 인물처럼 매력적인 조선의 왕이 과연 몇이나 있겠나? 여기에 저자는 투쟁에 지친 왕과 세도정치의 문을 열게 했다는 평가를 더했는데 이 부분에선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순간 반감이 들지만 깊게 생각하고 연구해봐야 할 대목이다.

 

저자는 네 명의 왕에 대한 이야기에 가정을 집어넣고, 왕들의 투쟁을 말한다. 가끔 현재 정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왕과 신하의 대립과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씁쓸하게 한다. 자신들의 이상을 위해서라기보다 권력을 위해 단순한 트집 이상의 과민반응을 보여주는 모습에선 반대를 위한 반대 이상을 생각하기 어렵다. 왕들의 리더십에 대한 해석과 수량화된 자료들은 또 다른 시각에서 그들을 보게 한다. 자주 사용되어 외래어 등은 국사를 다루는 서적임을 생각하면 자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권력 투쟁이란 제목과 달리 개인적 성격이나 상황에 더 비중을 준 듯한 인상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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