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머신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뒤끝이 깔끔한 소설이다. 상당히 좋은 평이지만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소설의 초반에서 약간은 진부한 느낌도 들었지만 뒤로 가면서 안정적인 이야기와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두 연인의 감정을 풍부하게 그려내면서 활기를 불어넣었다. 죽음 하나와 과거 둘. 하지만 이어져 있는 과거와 현재가 약간은 무겁고, 과거의 기억 속에서 추억으로 되살아나지만 그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 쉽지 않은 현실을 바라보는 과정을 이 소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가지. 죽은 청년의 이름이다. 해외여행 나갔다가 현지에서 한 여자와 죽은 그는 한 여자의 연인이자 한 남자의 친구였다. 그가 떠난 현실에서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였지만 과거의 추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소중한 추억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변함없이 이어지는 생활에 변화가 온 것은 나오코의 아버지가 가출하면서부터다. 전근 간 곳에서 가출하여 이전 집에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온 그가 아주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가 개입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두 연인들 사이에 정체되어 있던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충분하다.

  

추억은 기억을 먹고 자란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더욱 아름답게 윤색된다. 만약 그 대상이 사랑의 정점에서 죽었다면 더욱 힘겨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책 속에 나오는 대화 속에 잘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한다. “낯선 길을 걷는 것 같았는데...., 한두 번 와본 곳이 아니니까 헤맬 이유가 없는데, 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을까? 나오코, 넌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어?” 이 문장이 그들의 현재 삶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현재 살아가는 것이 낯선 것이고, 익숙함에 젖어들고, 하지만 상실감에 빠져있어 현재의 자신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삶을 그들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길 잃은 두 남녀의 길 찾기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설의 구성과 문장은 간단하다. 나오코와 다쿠미가 화자로 나와 자신의 시점에서 현재와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어렵게 비틀지도 않고, 철학적으로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다. 다만 자신들의 감정과 시선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와 가장 맛있었던 쥬스를 먹은 기억만으로도 충분한 추억이 한 사람의 죽음에서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것을 막고 있다. 서로가 알고 있던 가지에 대한 추억을,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그들을 보면 안타깝고 약간은 불쌍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 감정을 깊숙이 밀어 넣거나 파헤치기보다 거리를 두고 그려내면서 오히려 그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감정의 정체, 삶의 정체에서 그들이 마지막에 풀어내는 감정의 찌꺼기는 역시 서로가 솔직하게 감정의 두려움과 주저를 드러내면서 사라진다. 추억이 추억의 자리에 멈추고 있고, 과거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겨 놓을 때 비로써 그들은 자신들만의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나온 별똥별 머신은 그 찬란했던 청춘의 한 시기를 회상하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소원을 빌게 하는 멋진 장치다. 여운이 약간 약한 점이 있지만 역시 깔끔하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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