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날 사랑하지 않아?
클레르 카스티용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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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 화자가 말하는 이 소설이 결코 편안하게 읽히지 않는다. 후반으로 오면서 그의 행동을 영화로 본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다면 아마 저런 미친 놈이 있나! 하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책 속에서 너무 담담하고 자기위주의 진행이라 가끔 그의 착각과 오만에 살짝 동의하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그 의미가 아니잖아! 하면서.

 

한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지 보는 것보다 그가 그렇게 성장한 것에 더 놀란다. 엄마의 아빠에 대한 집착과 몇 번에 걸친 유산이나 행동은 다시 그에게서 되풀이되는데 작가는 그 원인에 대해 풀어주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이런 집착들이 등장인물들에게서 여러 번 반복된다. 화자에서부터 그의 아내 파트리샤까지 모두 집착이라는 것에 휘둘리며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

 

왜 날 사랑하지 않아? 라는 제목과 달리 이 소설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받길 원하는 사랑에만 집착한다. 로레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잔혹하면서도 무섭다. 한 번 잡은 손을 놓길 거부하고, 그녀의 절박한 마음을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착각하고, 주변에서 맴돌며 항상 감시한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하는 행동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끔찍한 스토커의 모습이다. 그러나 작가는 시선을 화자에게 고정시켜놓아 그런 감정을 많이 희석시킨다. 그에게 애정을 느낀다고 말한 작가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끔찍한 행동과 생각을 끊임없이 품어내는 화자보다 그의 아내 파트리샤가 더 이해하기 힘들다. 어딘가 정신적 결함이 있는 것으로 화자를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위해 자신의 아이들 쓰레기장에 유기시키고 돌아온 남자를 다시 받아들이는 장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다행히 뒤로 가면서 그의 실체를 깨닫고 변하지만 그에 대한 집착은 또 다른 화자의 모습이자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한다. 자신이 보는 것만 믿고, 생각한 것을 진실로 착각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를 생각하면 화자나 파트리샤와 우리의 차이점이라곤 정도의 문제뿐이 아닌가 한다. 이런 불편한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씩 몰입하게 되는 것도 이런 유사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 표지에서 피에로 옷을 걸치고 고개를 숙여 되돌아보는 웃는 소년의 모습이 처음보다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책 속에서 만난 그는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괴물 같은 인물이 유일하게 사람의 모습을 드러낸 장면은 “나는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길,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내 조그만 망토 자락을 바로 잡아주고 나를 내보내주길, 학교 문 앞에 날 내버려두지 않길, 함께 학교로 들어가 자리에 앉고 나를 앉혀주길 기다렸다.”고 말한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고 해서 과연 그가 보통의 평범한 사람처럼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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