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불행하다
카리 호타카이넨 지음, 김인순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나에게 필란드는 노키아와 자일리톨의 나라다. 세계 제일의 핸드폰 판매업체와 이제 완전히 우리 곁에 자리 잡은 껌 상표로 대표되는 것이 가장 강하게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정말 가끔 보는 ‘미수다’에서 따루가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지만 역시 광고의 홍수 속에서 끝까지 남는 것은 이 둘이다. 또 나처럼 북유럽 국가 구분에 무지한 사람에겐 각 나라의 특징을 내 것으로 삼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자주 그 나라들의 소설을 보더라도 헷갈려한다.

 

언제부터인가 주변에 북유럽국가의 소설이 번역되는 양이 늘어났다. 영미권과 프랑스나 독일 등에 집중되어 있던 소설이 동유럽이나 북유럽으로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이런 소설을 통해 흔히 매체를 통해 접하는 복지국가의 이미지나 신비화되고 환상처럼 부풀려진 이미지가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에서 비추어준 모습으로 그 나라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은 적도 있다.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들에서 제도나 삶의 극단은 볼 수 있었지만 진솔한 삶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가지는 것과 같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가정적인 남자다. 하지만 너무 심하다. 그런 마티가 아내 헬레나와의 말다툼 중 주먹을 휘두른다. 쌓여있던 감정들 때문에 아내는 이것을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다. 이 가정적이고 꼼꼼한 마티는 헬레나와 아이가 돌아오길 바라며 혼자 고군분투한다. 자신을 향한 아내의 말에 상처를 받고 얼떨결에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는 헬레나가 떠난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과 헬레나와의 과거로 생각이 파고들고 아내가 원했던 것이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헬싱키 주변 단독주택 시세는 너무 올라 그가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는 그 집을 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한다. 그 과정을 보면 처절하고 섬뜩하며, 때로는 정도를 넘어선 강한 집착에 놀란다.

 

집은 우리에게 삶의 터전이다.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이자 추억이 우릴 반겨주는 곳이다. 하지만 집이 재테크의 수단으로 바뀌게 되면 단순한 자산으로 변한다. 자산인 집에 추억이 있을 수는 없다. 단순히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마티는 자신이 잃어버린 가족을 되돌아오게 하기위해 단독주택이라는 새로운 공간과 그 속에서 이루어질 추억을 꿈꾼다. 그런데 이 집들이 너무 비싸다. 그가 둘러본 집들이나 만난 부동산중개인들은 과장 광고와 부풀린 환상을 심어준다. 중개인을 통해 집이 아니라 분위기, 미래, 희망을 판다고 말한다. 구입자들은 그들을 통해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보다 부동산중개인이 보여주는 것에 도취되는 것이다. 그것도 높은 가격으로.

 

책을 읽다 건너집이니 윗층사람들이니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다. 단지 마티와 헬레나 두 사람의 이야기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그들이 단순한 출연자가 아니라 공동주택에서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점을 보여주는 장치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울타리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겁내고, 약간의 불편함도 참지 못한다. 관계는 단절되고, 이웃은 사라지고, 삶의 공간은 점점 축소된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주인공이 아닌 조연들로 멋지게 보여주는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는 몰랐지만 읽고 난 후 단순히 읽고 지나간 것이 새롭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곳곳에 스며있는 블랙유머와 풍자는 새롭게 되살아나고, 속도감 있는 간결한 문장과 점점 불안감을 주는 마티의 행동은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흔히 우린 꿈을 꾸는 동안은 행복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꿈이 현실에서 깨어지는 순간 달콤했던 것 이상으로 우린 쓰라린 현실과 만난다. 이것이 소설을 모두 읽고 난 지금 마티의 행동에 대한 나의 정확한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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