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신동준 지음 / 살림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부국강병을 서로 의논하는 내용은 어디에 있나? 궁금하다. 책 제목에서 풍기는 부국강병을 위해 왕과 신하가 어떻게 정책을 펼치고 이를 위해 노력했는지에 대한 내용보다 저자는 군약신강(君弱臣强)을 기본 전제로 조선왕조 500년을 풀어내고 있다. 이전부터 조선왕조의 유학자의 나라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더욱 강하게 성리학자들의 나라로 변하면서 조선이 망하게 되었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몇몇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지만 과연 이것이 왜곡된 통치구조의 문제인지는 더 많이 논의되어야 할 대목이고 개인적으론 반대 입장이다.

 

기본 전제 조건이 군약신강이다보니 왕권 강화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작가의 시각이 보인다. 그리고 명청의 엄청난 황권과 비교하여 전개하는 곳을 볼 때마다 그 제국의 수명이나 수많은 문제점들이 먼저 생각이 났고, 이후 저자가 세도정치를 다룬 장에서 이를 비교한 대목은 차이를 위한 비교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세도정치가 왕권을 내세우지 않았고,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점에서 명대의 척신정치와 다르다고 하지만 황권을 자신들 마음대로 휘두르고 황제마저 바꾸었다는 사실을 보면 긍정하기가 힘든 부분이 많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불편하게 느끼는 몇 곳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기존에 읽은 책들과 상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세조와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부분이 있지만 납득하기 힘든 무리수도 많다. 세조의 왕위 찬탈은 선양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말하지만 단종의 죽음이나 김종서 등의 역모설을 그대로 주장하는 것은 분석의 틀을 군약신강에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세조를 무도한 사람으로 보게 된 것을 이광수의 ‘단종애사’라는 소설 탓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약간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두고 다른 평가를 내린 이덕일이 조선왕조의 잘못이 여기서부터라는 대목을 생각하면 너무 다른 분석이다. 아마 저자가 왕권 강화를 통치의 정론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연산군에 대한 저자의 다른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에 나온 내용만으로 저자의 의견에 동조하기는 어렵다. 반정세력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었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패도가 불러온 단순한 사림의 반격이라는 논리엔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저자가 “객관적으로 볼 때 연산군이 내세운 ‘신강=망국’이 더 근원적인 망국 논리이다” 대목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림이 정권을 잡고, 붕당으로 당파싸움이 벌어지고, 조선 후기 세도정치 등으로 이어지며 망국으로 끝나지만 과연 신하들의 세력이 강했다고 나라가 망했다는 논리엔 거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하게 보아 황권이 그렇게 강했던 명나라가 더 짧은 시간에 망한 것이나 다른 왕조들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역사서도 개인적인 이론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진다. 새로운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사실에 놀라고, 거부 반응도 생기긴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나 시대에 대한 것이지 왕조 전체인 경우는 드물다. 특히 이 책을 보면서 놀란 것은 실록에서 다룬 많은 모반에 대해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안평대군, 남이, 정여립 등의 모반설이다. 민란이야 명확한 실체가 있고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지만 이들의 역모설은 아직도 논쟁 중이거나 부인하는 사가들이 많음을 생각할 때 저자 자신도 혹 군강을 위해 무시하고 지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보통 책을 집어면 단숨에 읽어나간다. 한 자리에서 모두 읽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책만 읽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기본적인 분석틀이 나와 맞지 않았고, 가끔 나오는 문장에 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지 않나 의심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륜의 운하설이 부국강병책의 고심이라는 대목이나 서울의 수도가 중국의 북경이나 일본의 도쿄에 비해 역사가 짧다는 매목 등이다. 어쩌면 나의 과민한 반응일 수 있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책도 아니고 분석의 틀에 동의하지 않지만 장점은 있다. 방대한 왕조사 전체를 다루면서 새롭게 생각하고 논의할 대목을 많이 보여준다는 점이다. 몇몇 사람에게 집중된 연구나 그대로 믿어온 사건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가지게 한 것도 좋았다. 하지만 역시 제목에 불만이 있고, 조선 왕조 역사에 대한 입문서로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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