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송어낚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상한 것보다 더 어렵다. 그 어려움이 문장의 난해함이나 철학적 어려움이 아닌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1960년대 세계 젊은이를 사로잡았다고 하지만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은 미국이나 서양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쌓여있지 않다면 이해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조금은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조그마한 지식조차 산산조각 나버렸다.

 

소설을 읽다 차라리 주저리주저리 장황하게 이야기와 뜻을 풀어내었다면 그 난해함에도 약간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말 그대로 절제된 언어와 문장 때문에 날카롭다고 말해지는 풍자와 해학을 충분히 즐길 수 없었다. 오히려 열심히 주석을 찾으면서 작가가 나타내려는 의도를 짐작하고 해석하는데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 이것은 어쩌면 나의 독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미국적인 은유와 풍자가 줄줄이 나오는 것도 무시하기 힘들다.

 

사실 분량으로 본다면 많지 않다. 200페이지를 넘기기는 하지만 한 페이지의 글자 수를 생각하면 중편소설 정도의 분량이다. 그런데 읽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그 두 배가 넘게 걸렸다. 허나 책 속에 담겨있는 매력의 반의 반도 채 느끼지 못하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한 세대의 정신을 움직인 미국의 송어낚시가 나의 마음에 살아있기보다 나의 무지 속에 파묻혀 허우적거리기만 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소설은 한 번 읽고 이해가 힘든 경우가 많다. 다시 한 번 더 읽는다면 아마 주석에 의지하지 않고 책의 순수한 흐름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다면 아마 작가의 풍자나 해학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되지 않을까 한다. 아는 부분과 약간은 평이하게 쓰여진 곳에서 재미와 은유를 깨닫게 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쫓아 본류를 찾아 즐기기엔 나의 이해와 지식의 폭이 너무 좁다. 언젠가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때는 좀더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