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보다 높이 창비시선 473
신철규 지음 / 창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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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73권이다.

매년 올해는 매월 한 권씩 시집을 읽어야지 다짐한다.

이 다짐이 실천으로 옮겨진 해가 과연 있을까?

1월이 지나갔고, 2월이 시작했지만 이제 겨우 한 권 읽었다.

연말에 시집 한 권을 읽고 시에 약간의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데 다시 시인이 말하고자,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4부로 구성된 이 시집도 나의 취향이나 독서와 떨어진 시들로 가득하다.

비교적 쉽게 다가온 3부이지만 역시 명확한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표제시 <심장보다 높이>를 읽다 보면 슬픔, 불안, 무거움이 느껴진다.

잠시 전기가 나간 욕실에서 그가 느낀 이 감정들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일 것이다.

<날짜변경선>을 읽으면서 그가 내뱉는 증오의 감정은 나의 과거를 떠올린다.

언제쯤이면 나를, 내 삶을 덜 증오하게 될까 / 나이가 들수록 증오는 더 거세게 타오른다 /

증오의 정점에서 나는 나를 밀어버릴 수 있을까”(부분)

왜 이렇게 증오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일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 개의 도끼날이 아슬아슬하게 / 스쳐간 순간이 있었다”(<공중그네> 부분)

이 시어를 읽고 이 표현이 함축하는 불안과 공포와 스릴이 강하게 다가온다.

11월을 “같은 숫자가 나란히 서 있다”라 했을 때 잊고 있던 단순함이 떠올랐다.


<슬픔의 바깥>은 쉽게 따라갈 수 있는데 대출이 사라진 것과 하루살이가 교차한다.

지난 해 빌려 쓴 농약과 농자재 대금은 갚았지만 올해 빌린 혹은 빌린 대금은?

<어디까지 왔나>는 아이가 “-엄마 엄마, 어디까지 왔나.” 묻는 질문이 추억을 불러온다.

내가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 나의 아이도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깨진 어항 속 물고기는 변기 속에 버릴까? 에 대한 작은 답이 <어항을 깨뜨리다>에 있다.

어릴 때 많이 한 <귀신놀이>는 즐거움 대신 무게와 잿빛과 땀과 붉어진 얼굴로 그려진다.

생략된 시어 속에, 귀신이 될 다음 친구를 지목하는 순간 그 재미와 즐거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내가 놓친, 즐기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한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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