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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틈새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시리즈로 나에게 알려진 작가다.
아직 읽지 않은 시리즈이지만 서점 매대에서 자주 봐서 익숙하다.
언제 시간 나면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른 소설로 기회가 되었다.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란 부분에 더 눈길이 갔다.
어떤 소설이기에 이런 문학상을 받았을까 하는 호기심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일본이 얼마나 남성우월주의 사회인지 직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리와 다른 방향에서 놀라운 점이 많았다.
마나의 남친이나 후코의 남편과 시댁의 모습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다섯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중심에는 가족 장례 전문 업체 기시미안이 있다.
첫 화자인 마나는 여성 장례지도사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직업을 그녀의 엄마도, 그녀의 남자 친구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절친 두 명이 있는데 후코와 나쓰메다.
후코의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해 나쓰메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이 과정에 흘러나오는 그들의 희망사항과 현실의 문제는 다음 이야기에서도 이어진다.
특히 매춘을 하는 문학상 작가 출신 나쓰메의 장례와 그녀의 사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실제 얼마나 많은 문학상 작가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작품에 자신의 삶과 열정을 다 갈아 넣은 그녀가 선택한 죽음도 강렬하다.
작가는 여성이기에 강요된 선택과 학폭 문제 등을 섬세하지만 날카롭게 다룬다.
마나와 후코는 여성과 아내란 지위를 강요받고 자신들의 경력을 무시당한다.
전남편 애인의 장례식을 도와주는 치와코는 남편의 무능력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가 홀로 딸을 키워내었지만 딸은 맹목적 열정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내던지려 한다.
이 과정에 흘러나오는 과거와 남편의 실체는 뭐지? 하는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치와코도 기시미안의 협력업체 중 한 곳인 꽃가게에서 일하는 중이다.
학폭은 기시미안의 신입인 스다의 이야기에 나온다.
스다의 엄마는 어린 시절 외모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스다의 인생은 중요한 순간에 엇나가면서 과거를 벗어날 기회를 놓쳤다.
타인의 불행을 보기 위해 온 곳이 장례식장인데 학창 시절 그를 괴롭힌 동창이 왔다.
학폭을 벌인 자들의 진심과 현재를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이 나온다.
절친이자 전 남친이 무면허 운전 차량에 치여 죽은 료코.
전 남친과 헤어진 이유 중 하나가 그가 가진 직업 때문이란 사실은 다른 사람과 동일하다.
첫 아이를 낳은 후 남편과 성관계를 하면 통증을 느끼는 료코.
이런 료코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남편.
동창의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주는 남동생.
이 도움에는 남동생의 요청 사항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마나를 관찰해달라는 것이다.
훌륭한 삶을 살다 불행한 사건으로 죽은 친구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시간.
멋진 대사와 가슴에 담아둘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마나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시누이 사이가 될지 모르는 둘, 자신의 경력과 삶을 살고 싶은 마나.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의 불합리했던 행동들.
작가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선택은 당사자가 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마지막 장에 도착하면 앞에 나온 장례식장을 운영하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사장 이야기.
왜 마나의 직업을 인정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남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시간은 흘러 한때 가십이었던 나쓰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기념영화가 재상영된다.
그녀의 삶을 더 알게 되면서 다르게 다가온 영화의 이해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번 이야기의 백미는 진솔한 마음을 쏟아내는 장면들보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다.
자신이 죽은 후 원하는 방식으로 장례가 치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야나기자와 씨.
그의 장례식은 아들의 도시락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화려하게 치러진다.
그런데 이 장면이 왠지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이청준의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후코가 “어른이 된다는 건, 상실의 연속인 걸까?”란 물음은 화두처럼 다가온다.
가독성과 재미, 문제의식 등이 잘 어우러진 멋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