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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오서 지음 / 씨큐브 / 2024년 12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종심 선정작이다.
개인적으로 이 문학상 수상작을 좋아하기에 눈길이 갔다.
나에게 삼랑진역은 그렇게 낯선 지명은 아니다.
아마 오래 전 무궁화호 등을 타면서 지나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KTX가 생기면서 일년에 두세 번 KTX를 타지만 삼랑진역에 서지 않는 것은 몰랐다.
그리고 삼랑진역과 밀양을 같이 엮을 생각도 못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삼랑진역의 풍경만 생각했지 밀양은 기억 뒤로 숨었다.
그것과 별개로 소설에서 소개한 지역에 대한 소개와 묘사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볼 정도인데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
무궁화호 기차에 탄 후 두 남녀 창화와 미정은 우연히 대화를 나눈다.
기차에서 낯선 두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많은 소설 등에서 등장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 흔한 방식과 다르게 진행된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두 남녀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창화는 한국 최고의 인테리어 회사에서 억울하게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미정은 계약직을 전전하다 결국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한다.
창화의 집은 부산, 미정의 집은 밀양 삼랑진역 근처다.
미정은 바로 가는 KTX가 없어 무궁화호를 탔고, 창화는 빨리 갈 이유가 없어 탔다.
이 우연한 만남과 둘의 대화는 서로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작동한다.
재밌는 것은 둘다 젊은 나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창화의 정확한 나이는 나오지만 미정은 비슷한 나이로만 나온다.
40대, 어쩌면 인생의 큰 파도가 한 번 일어나는 나이이지만 안정기에 들어갈 나이이기도 하다.
창화가 결혼하지 못한 사연은 나오지 않지만 미정은 비혼주의자다.
둘은 기차 안에서 친구들의 전화를 받는데 이것을 옆사람이 듣게 된다.
밀양 얼음골 사과가 둘을 이어주고,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왜 KTX를 타지 않는지, 삼랑진역과 밀양 얼음골 사과에 대한 이야기 등.
이 짧은 만남은 생각보다 서로의 감정이 통하는 것을 느끼게 하고 각자의 고향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각각 다른 모습의 부모님이 그들을 맞이한다.
창화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아들이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대학도 행정학과를 나왔지만 그는 힘들게 서울에 있는 대기업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했다.
학연이 판치는 이 회사에서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으면서 버텼다.
하지만 끌어주고 밀어주는 선후배가 없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퇴사했다.
절친 경식은 상사이자 동문 선배가 끌어주지만 그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소모품이었다.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고 휴가를 받았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린다.
결국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부모님이 보여준 반응은 예상외로 담담했다.
그리고 길에서 밀양 얼음골 사과를 사게 되면서 미정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미정을 찾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실제 쉬운 일도 아니다.
미정은 지방 전문대를 나온 후 계약직으로 계속 서울에서 살았다.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정규직과 계약직은 서로 다른 계급이다.
정규직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비혼으로 사귄 남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한다.
이별 후 삼 개월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한 전 남자 친구. 흔한 일이다.
허무하고 힘든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기 위해 삼랑진 집으로 내려왔다.
그녀의 삶은 한국의 무수히 많은 비정규직 여성을 한 면을 대변한다.
그리고 친구 현주의 딩크족 사연을 풀어놓으면서 또 다른 우리 사회의 한 면을 보여준다.
이렇게 작가는 각 소수의 삶을 보여주면서 큰 그림 대신 일상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이 과정에 세심하게 다루고 표현한 문장과 감정은 조금씩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약간의 환상적인 모습, 쉽게 처리되는 문제 등이 있지만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는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