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밀리언셀러 클럽 69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다섯 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희곡으로 구성된 단편집이다. 루헤인의 번역을 거의 모두 읽은 지금 이 단편을 보면서 역시 루헤인이라고 생각한다. 암울하지만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나오고, 막막한 삶에 치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단면들은 안타까움과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나 자신도 모르게 이 단편에 나오는 인물들을 그의 다른 작품 속 인물과 비교하거나 대입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약간은 멋쩍다.

 

각 편마다 분량도 다르고 다루고 있는 내용도 다르지만 ‘들개사냥’과 ‘코퍼스 가는 길’과 ‘그웬을 만나기 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표제작 ‘코로나도’는 ‘그웬을 만나기 전’을 극본으로 각색하면서 새롭게 살을 붙인 작품으로 단편과 다른 재미와 비슷한 줄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애착이 간다. 그리고 ‘들개사냥’이나 ‘그웬을 만나기 전’은 개인적으로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 아닌가 한다.

 

‘들개사냥’을 보다보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것은 약간은 불안정한 블루 때문이기도 하고 엘진 때문이기도 하다. 그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중심에 놓인 쥬얼과 엘진의 불륜과 쥬엘에 대해 숭배하는 마음 가득한 블루가 그의 과거 이야기와 더불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전의 영향 아래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엘진이 파국의 한 축을 담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이런 개성적인 인물과 쥬얼이라는 요녀가 만들어내는 조그마한 도시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그웬을 만나기 전’은 삼인칭으로 진행되는데 첫 부분에 약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인물이 한 명 더 이야기 속에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바비와 그 아버지의 대화 속에 감추어진 대립과 갈등이 재미를 불러왔다. 300만 불짜리 다이아몬드를 두고 벌어지는 신경전과 그 마지막 대결은 루헤인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악의 충돌을 잘 드러낸 장면이 아닌가 한다. 그 뒤에 나오는 ‘코로나도’를 연속하여 읽다보면 새로운 이야기와 결합하여 색다른 묘미를 느끼게 만든다.

 

‘코퍼스 가는 길’은 가슴속에 쌓였던 분노와 좌절이 폭발하는 소설이다. 화자는 미식축구 쿼터백으로 팀을 대회 결승으로 이끌어 대학에 스카우트되길 바란다. 그러나 부유한 집 출신 선수의 연속된 실수로 기대하였던 미래가 좌절되면서 느낀 감정을 그 선수의 집에 쏟아 부어 파괴하는 장면과 그 집 딸과 함께 다른 엄청난 부자 집에서 그 화려함 등에 압도된 장면이 비교되면서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한다. 하나는 선수의 집에서 이미 분노를 털어낸 것이고, 하나는 말 그대로 화려함에 주눅이 든 것이다. 갈 곳을 잃은 그가 퍼붓는 분노와 그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정적인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다른 두 작품인 ‘ICU’와 ‘독버섯’은 이해를 잘 못하거나 재미를 충분히 만끽하지 못했다. 그냥 읽고 지나갔지만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고, 감정 이입도 충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소설들은 그의 느낌이 살아있어 즐거웠다. ‘그웬을 만나기 전’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데 어떤 모습으로 표현될지 궁금하다. ‘코로나도’는 왠지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아 고생하였는데 연극으로 연출된 것을 한 번 보고 싶다. 대화와 무대장치와 조명으로 만들어진 그 공간과 움직임이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니스 루헤인의 장편과 약간 다른 분위기지만 그만의 매력이 살아있는 단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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