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뭐래 창비시선 489
정끝별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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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 이전에 다른 시집을 읽은 기억은 없다.

52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어렵고 재밌고 흥미로운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1부의 시들이 어렵게 다가왔다.

표제시 <모래는 뭐래?>는 간결한 시 속에서 ‘설마 모래가 너일까?’ 묻을 때 ‘나’를 떠올린다.

모래를 비유한 글과 모래를 이용한 과학 등도 간결하게 녹아 있다.

시인은 이 시집에 동물들을 가끔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고양이다.

고양이를 보면서 읊조린 <회복기>의 한 대목은 순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이제 봄이겠구나 / 어느 봄 햇살에 나도 녹아들겠구나 // 봄이 다디단 이유일 거야”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에서 가슴 아픈 사랑 하나를 만난다.

국도에 버려진 개 이야기로 시작해 끝내는 자신의 감정으로 마무리하는 그 시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 너를 향한 나의”

<이건 바다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다>는 <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와 이미지가 겹친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알래스카의 바다코키리와 열대 늪지대에 사는 브리질 악어의 처절한 몸부림이 말이다.

절박이 절벽을 부르고 / 착각이 착란을 부른다” (<이건 바다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다> 부분)

줄어드는 밥그릇을 향해 떼 지어 몰려들 때 우리는 / 서로에게 흉기가 된다 얼굴을 잃고 이름을 잃고”

(<이건 좀 지옥스러운 이야기>의 부분)


오래된 이야기로 넘어가면 다시 추억과 사랑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너였던 내 모든>에서 이해 부족과 오해가 만들어낸 이별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청파동 눈사람>에서 “청춘이란 그렇게 / 파국을 향해 직진하는 것 / 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라 말한다.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면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갈매기의 꿈’을 둘러싼 시들이 몇 편 있다.

1974년 판권을 그대로 붙인 시를 읽다가 오래 전 떠올린다.

언니와 엄마에 대한 추억과 회상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시가 두 편 있다.

<언니야 우리는>과 <응암동엔 엄마가 산다> 등이다.

전편이 같은 여성인 가족이 겪은 지치고 힘든 감정을 잘 풀어내었다면 후편은 늙으신 엄마의 사랑이다.

여든여덟살배기 엄마가 막내딸 방귀 뀐 것을 종아라 한다.


<처용가>와 <공무도하가>를 소재로 쓴 시들도 재밌다.

<시는 어디에?>에서 한-이란 친선 시 낭송으로 시작해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로 넘어간다.

<처용가>의 한 대목이 인용되고, 미니교와 마니산을 엮는 상상을 한다.

<시인은 누구?>에서는 <공무도하가>를 논문으로, 노래로, 만화영화로, 소설 등으로 변주된 이야기를 한다.

이 노래가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파고드는 곳에 시인의 꿈이 또한 혼란스럽게 녹아있다.

해설이나 출판사 리뷰에 애너그램을 활용한 시들이 눈에 띈다고 했는데 사실 그렇다.

입속으로 읊조리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리듬을 얻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일상과 추억과 애상을 파고든 감상에 더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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