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 호러 × 제주 로컬은 재미있다
빗물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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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7명이 제주를 배경으로 호러 단편 앤솔러지를 만들었다.

이 일곱 명 중 몇 명은 익숙하고, 몇 명은 처음 만났다.

개인적으로 제주도를 최근 일년에 한두 번 갔는데 낯선 이야기들이 나와 반가웠다.

그냥 무심하게 본 유적지에 담긴 슬픔과 비극은 다시 그곳을 가보고 싶게 한다.

그리고 이 앤솔러지에서 다루는 역사의 비극들은 너무나도 익숙한 사건들이다.

시대순으로 따지면 이재수의 난, 일제강점기, 제주4.3사건 등이다.

물론 이런 역사적 비극 대신 전래 전설과 신화를 변주한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 바닥에는 제주도가 역사 속에서 겪었던 수많은 수탈과 억압이 깔려 있다.


책 속에 제주도 지도와 함께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무심코 쳐다보다 제주도 동쪽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까? 관광지는 동쪽이 더 유명한데.

그리고 이 지역들은 내가 알게 모르게 모두 지나가거나 방문한 곳이다.

전건우의 <곶>의 무대인 신례리 숲 터널은 낯선 곳이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도로 중 하나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몰랐다.

지금은 5.16도로숲터널로 유명한데 개발과정을 호러물로 바꾸었다.

곶과 그슨새를 연결해 단순하고 잔혹한 호러물이 되었는데 재밌다.

홍정기의 <등대지기>는 이어도를 다른 섬으로 만들어 이야기한다.

이어도를 수중암초라고 단정한 것에 상상력을 덧붙였는데 이 부분은 좋다.

하지만 갇힌 공간에서 2년 보내기와 공포의 연결은 조금 약한 것 같다.


빗물의 <말해줍서>는 애월읍 빌레못 동굴과 제주 4.3을 엮었다.

제주도를 여러 번 가면서도 한 번도 4.3평화공원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뭍에서 자란 주인공은 4.3사건의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이 경험 속에 뭍에서 겪은 일들이 교차하면서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보여준다.

뛰어난 가독성과 문제 의식은 탁월하지만 갑자스러운 전환과 결말에는 의문이 있다.

이작의 <청년 영매 – 모슬포의 적산가옥>은 제목에서 일제강점기가 떠오른다.

모슬포에 몇 번 갔지만 적산가옥이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이 항구와 비행장이 엮인 시대의 비극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제주 전래신화와 원귀 등을 엮어 빙의로 풀어내는 마지막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박소해의 <구름 위에서 내려온 것>의 무대는 송악산 해안 동굴 진지다.

송악산에 갔을 때 잠깐 둘러봤는데 그렇게 인상적인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단편을 읽으면서 제주 곳곳에서 본 일제의 진지 등이 같이 떠올랐다.

군산오름의 몇 개나 되는 좁은 진지들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제 말기의 폭력과 억압 속에서 한 마을 사람들이 겪은 고통이 잘 드러난다.

이 소설 속에서 이재수의 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른 단편과 다른 내용이다.

사마란의 <라하밈>이 바로 이재수의 난과 연결되어 있다.

성당의 신부님과 구마행위를 엮고, 낯익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단편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사람의 몸에 갇힌 악마에 대한 것이다.

신부의 구마행위가 퇴마가 아닌 갇힌 것을 풀어준다는 것이 인신의 반전이었다.

이 설정을 보면서 <곶>의 무리한 공사가 그슨새를 풀어주는 것이란 설명과 연결되었다.


다양한 글쓰기를 한 듯한 WATERS의 <너의 서 있는 사람들>은 차귀도가 배경이다.

검색하면 무인도로 나오고, 유람선 등의 관광과 낚시로 가는 것 같다.

작가는 여기에 상상력을 덧붙여 한 집성촌이 거주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불륜 전문 탐정이 의뢰받은 시댁이 데리고 간 아이 찾기로 넘어간다.

탐정과 조수가 찾아간 차귀도는 우리가 아는 그 차귀도가 아니다.

이상한 해무와 사건들과 납치된 아이의 존재는 마지막 장면에 연결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에 나온 섬 사람의 대사다.

이 부분은 홍정기의 <등대지기>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일곱 단편은 독자적이면서도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언젠가 제주 동쪽을 무대로 한 단편도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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