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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피
나연만 지음 / 북다 / 2024년 10월
평점 :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가독성과 재미 때문에 이 문학상에 계속 관심을 둔다.
“엄마를 죽인 범인의 시체가, 내 눈앞에 있다.”는 광고 문구가 강렬하다.
작가의 세 번째 장편 소설이라고 하는데 송경혁이란 이름으로 <여섯 번째 2월 29일>이 나왔다.
이 이름으로 검색하니 이전에 읽었던 <충청도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린다>도 보인다.
작가의 첫 단편 소설 <돼지>의 앞부분을 변주해서 장편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이런 자잘한 기록들은 언제나 나의 시선을 끌고,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빠른 전개와 뛰어난 가독성은 쉼 없이 나아가게 한다.
사준우는 반려동물 장례식장 소각로를 운영한다.
원래 이 땅은 그의 아버지가 돼지 농장을 하던 곳이다.
아버지는 오랜 세월 돼지 농장을 하면서 병에 걸린 돼지들을 몰래 땅속에 묻었다.
준우는 이 모습을 보면서 자랐고, 그 농장에 어떤 것이 묻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가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지을 때 지하를 파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려동물 소각장이란 설정 자체에서 풍기는 대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고 모두 읽은 후 다시 첫 쪽을 읽으면서 놓친 것들을 발견한다.
준우가 자신의 엄마를 죽인 범인 안치호를 죽이려다 역습을 당했다.
그런데 그가 깨어났을 때 안치호의 시신이 잘 정리되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사체 처리를 잘 해라는 문자까지 와 있다.
준우는 안치호의 출소일에 일부러 그 형무소까지 찾아간다.
그곳에서 이복누나 준서를 보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형사다.
그녀와 함께 일한 박한서 형사는 소설 속에서 특이한 행동과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가 쫓는 사건은 아라뱃길에서 발견된 시체들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것이다.
준우는 안치호의 발목 하나를 아라뱃길에 유기했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의뢰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상황을 잘 모를 때는 연쇄살인범과 안치호를 죽인 인물이 동인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이 더 진행되면서 두 인물이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드러난 사실들은 혼란 속에서 뒤섞이고, 준우와 연결된 인물은 누구인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박한서 반장이다.
묘하게 용의자의 신경을 긁어대고,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것을 재빠르게 파악한다.
드론을 이용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찌르면서 범인에게 다가간다.
이런 그의 수사 기법은 긴장감을 불러오고, 사건이 어디로 튈지 모르게 한다.
준서가 들려준 그의 일화들은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이에 반해 준우의 활약은 평범한 사람 그 이상의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일반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느끼지는 감정을 돌아보게 한다.
그에게 안치호 시신을 처리하게 한 인물에 대한 조사와 확신은 읽는 내내 불안하다.
하지만 마지막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은 이것을 잊게 한다.
읽는 내내 반려동물 소각로에서 이렇게 불법 사체를 소각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많은 범죄자에게 이보다 좋은 증거 제거 장소는 없을 것이다.
소설 속에는 무수히 많은 살인이 존재한다.
살인은 흔적을 남기고, 이 흔적을 없애는 것이 최대 난제다.
연쇄살인범도 계속 집에 둘 수 없어 아라뱃길에 신체 부위들을 유기하지 않았는가.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준우의 소각로는 최고의 장소가 된다.
그에게 안치호 살인자가 다른 시체 처리를 부탁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단순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마지막 장으로 가면 과거에 덮어둔 많은 비밀들이 밖으로 드러난다.
이 비밀들이 앞에 미진하게 풀어둔 것들을 맞물려 돌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