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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한 사람의 마지막이 아닌 한 도시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야기가 서양에선 몇몇 보인다. 한 도시의 함락이나 파괴가 아닌 말 그대로 소멸에 대한 것이다. 폼페이, 소돔과 고모라, 아틀란티스 등. 물론 동양에도 이런 곳이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 나의 기억으론 떠오르는 것이 없다.그만큼 흔한 것이 아니고, 그것에 대한 자료와 역사적 중요성이나 지명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폼페이. 이 도시 또한 나의 성장기에 접한 수많은 영화나 서적에서 다루어진 도시의 이름이다. 베수비우스 산 화산 폭발에 의해 묻혔고, 우연한 발굴에 의해 그 생생한 현장을 드러낸 곳이다. 현장과 역사적 기록에 의해 그 웅장한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그 최후의 순간에 대한 역사학자나 소설가나 과학자 등의 끊임없는 연구와 지적 탐험의 대상인 곳이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작가가 그 마지막 순간을 굉장히 멋지고 흥미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주인공 아틸리우스는 아우구스타 수도교의 수도기사다. 그의 전임자가 실종된 후 수도교를 관리하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그 시기가 불행하게도 화산 폭발 불과 며칠 전이다. 미세눔의 수도 물 공급에 문제가 생겨 새로운 샘을 파려고 하지만 이상한 현상과 유황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해 알기는 어렵고 바로 이 시점부터 소설은 다양한 계층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멋지게 그려내면서 그 최후의 이틀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하나의 현상이나 사건을 맞이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입장이나 이익에 따라 갈라진다. 아틸리우스는 수도교의 회복에, 해방 노예 출신의 거부 임플리아투스는 새로운 부를 축적할 기회로, 제독이자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지적 충만을 위한 관찰과 기록의 순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다른 목적과 행동의 결과가 그 시대의 풍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더불어 긴장감과 생동감을 준다. 특히 화산 폭발 후 모습을 보면서 새롭게 인식한 부분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어떻게 그들이 현재의 유적으로 남게 되었는지와 플리니우스가 보여준 괴팍하고 여유로운 행동들이다.
이 소설이 단순히 폼페이 최후의 순간에 대한 기록이라면 오락적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대단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시대의 수도교를 자세하게 그려내면서 그 시대의 문화적 경제적 상황을 보여준다. 현존하는 수도교의 모습에서 그 엄청난 모습을 보게 되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작가는 이 수도교와 수도기사를 통해 새롭게 그 시대를 인식하게 하고, 그 최후의 순간에 맞이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현대적 모습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
각 장 앞에 화산학에 대한 설명은 뒤에 나올 사건을 이해하는 단서이자 소설을 위한 복선 역할도 수행한다. 또 임플리아투스가 부의 축적에 가장 좋은 것이 부동산이라 외치는 장면에선 씁쓸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것을 외치니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생활이 어렵기만 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대화 속이나 추억 속에서 드러난 과거의 모습과 아쿠아리우스가 삶의 의욕을 불태우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이었다. 폼페이 최후의 순간이나 로마시대 그 엄청난 수도교와 시대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좋은 소설이다. 그나저나 역시 임무에 충실한 우직한 사람은 언제나 멋있지만 힘겨운 고난을 피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