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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오컬트 포크 호러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4년 9월
평점 :
작가의 호러 고향 섭주가 이번에도 이야기의 무대다.
그의 섭주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도시의 귀신들은 얼마나 많은 거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렇게 많은 호러를 양산하는 것을 보면 문득 배트맨의 고담시가 떠오른다.
사건, 사고와 악당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그 고담시 말이다.
이런 도시를 생각하면 앞으로 더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섭주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초현실적이고 기괴한 분위기는 이 단편집에 잘 나타난다.
작가 특유의 한국 고유 무속신앙과 공포를 엮는 기술은 이번에도 빛을 발휘한다.
세 단편 속에서 이전에 출간된 호러 대상을 찾는 것도 재미 중 하나일 것 같다.
저질 기억력을 가진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수낭면에 가면 수낭법을 따르라>는 읽다가 <올빼미 눈의 여자>가 떠올랐다.
본문 속에 책 제목과 연관된 이름이 나와 괜히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시대 때문인지 <살>의 느낌이 들었다.
시대는 1980년대, 공간은 당연히 섭주, 그 중에서 낯선 지역인 수낭면.
수낭면 국민학교에 부임한 교사 이상식은 자린고비이지만 술을 좋아하는 선생이다.
섭주의 다른 면에 살면서 스쿠터를 타고 출퇴근하는데 음주 운전 때문에 주변에서 걱정한다.
동료 교사들과 회식 술자리를 가지면서 학교 옆 화장실 괴담을 나눈다.
미국에서 돌아온 아메리카 김이라는 사람의 돼지 사육과 이후 발생한 전염병에 대한 것이다.
전염병의 책임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아메리카 김을 지목하고, 그의 집을 불태운다.
흔한 학교 괴담이 펼쳐지는 듯한데 이상식이 괴담과 엮이면서 다른 세계로 발을 들인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무속신과 악귀의 대결이자 권력 다툼이다.
<며느리는 약했지만 여인은 강했다>도 한국 토속 무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열녀문이 내려진 최 진사댁 고택을 보수하는 데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 철거하려고 한다.
영험한 무당이 다른 집을 철거해도 이 열녀문이 있는 집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고택의 철거 소식을 들은 공포소설 작가 최수현이 자료 조사차 섭주에 도착한다.
그는 이 최 진사댁 며느리에 대한 비밀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지만 현장 조사 때문에 왔다.
혹시 그가 가진 자료에 나오지 않는 그 마을의 분위기와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골동품 가게 ‘고문관’ 주인에게 며느리와 관련된 전설을 듣지만 그가 가진 자료보다 못하다.
그 며느리의 전 연인이었던 조상이 남긴 기록이 전설의 이면을 알려준다.
신분 상승의 욕망과 뒤틀린 행동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여성 잔혹사와 이어지고, 강인한 여성의 복수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지옥에 떨어진 형제>는 저주와 살의 위협 아래 노예처럼 산 형제 이야기다.
뛰어난 작품으로 개인전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이정욱 화백.
미술잡지 기자가 그의 작품의 의미를 묻자 자신의 가족이라 설명하고 운다.
그러다 이정욱 화백의 기이한 행동과 비참하게 죽은 사실이 알려진다.
그는 강력한 부적과 칼을 들고 섭주란 도시에 가서 죽었다.
그리고 미술잡지 정나영 기자에게 <이정욱 비망록>이란 책이 도착한다.
이 비망록 속에는 그의 일생과 가족의 비극, 형의 비참한 과거와 현재가 들어 있다.
무속 신의 힘을 빌려 살인을 저지르는 무녀, 그 밑에서 공포에 떨었던 두 형제.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알지만 도와주려는 의지가 없던 이웃들.
탐욕과 육욕이 뒤섞이고, 폭력과 학대, 갈취 등이 계속된다.
그리고 화가의 그림 속 세 명의 사람이 의미하는 바가 새롭게 해석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기자의 행동이 의외였고, 작가의 간단한 이유가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