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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ㅣ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4년 7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헤세의 글을 읽었다.
이 책은 헤세의 글을 폴커 미헬스가 엮었다.
헤세의 에세이뿐만 아니라 소설의 일부와 시, 편지들을 같이 엮었다.
방대한 자료 속에서 발췌해서 엮었는데 좋은 글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런 아포리즘 같은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취향을 많이 탈 것 같다.
좋은 글, 의미심장한 문장 등을 모으는 독자에게는 딱 맞을 듯하다.
오래 전 읽었던 그의 소설들을 생각하고 다가 간 나에겐 소설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를 좀더 잘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
읽다 보면 빠져들게 되는 데 갑자기 중략된 부분이 나온다.
소설의 일부를 인용한 글이라 생략한 듯하다.
아주 오래 전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소설의 제목도 보인다.
한때 <데미안>에 빠져 그의 소설을 열심히 찾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른 소설들은 나의 취향과 동떨어져 있었는데 이번에 그 이유 중 일부를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나의 취향이 바뀌고, 생각도 바뀐 것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부분에 대한 글은 많이 공감한다.
만약 어릴 때 이런 글을 읽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헤세의 긴 세월 동안 쓴 글들을 편집한 이 책이 주는 매력 중 하나다.
헤세가 살았던 시기에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있었다.
1차 대전 이후에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무너졌는지는 그후 문학에서 자주 나온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은 지식인이라면 인간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갖 폭력과 야만이 판쳤던 그 시기는 지금 생각해도 암울하다.
이런 시기를 겪은 탓인지, 인도 철학 등의 영향 탓인지 개인에 천착한다.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글은 공감할 부분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혁명에 대한 반감이 드러날 때 나의 시선도 살짝 날카로워진다.
헤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기에 이 반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 다시 헤세의 소설을 읽게 된다면 조금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헤세는 삶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면서 살았다.
삶의 고난과 고통, 욕망과 즐거움에 대한 글들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종교와 깨달음에 대한 글들은 진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가슴보다 머릿속에 담아 두고 공부한다면 좀더 넓은 시각을 가질 것이다.
개인에 오롯이 집중한 그의 글들은 사람이 모두 다르다고 말한다.
개인의 고유성에 대한 이 부분은 우리가 너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인의 지혜에 대한 글은 요즘 같은 시기에 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늙으면서 점점 추악해지는 인간들을 볼 때면 늙는다고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늙으면서 덜 추악해지기 위해서는 배우고 닦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이 책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