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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스트리트
제니 잭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7월
평점 :
먼저 작가의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코맥 매카시, 케빈 콴 등의 유명 작가들을 담당했던 편집자였기 때문이다.
많은 책에서 편집자들이 소설 쓰기를 바란다는 글을 봤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코로나 19의 펜데믹은 재택근무를 하게 하고, 이때 소설 쓰는 것이 가능해졌다.
베테랑 편집자가 선택한 미국에 불고 있는 상위 1% 상속자들의 고민과 그들의 삶이다.
파인애플 스트리트는 브루클린 하이츠에 있는 과일 이름의 거리 중 하나고, 현재 작가가 사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의 집값은 아주 높고, 보통의 사람들이 살기는 힘든 곳이다.
부동산 재벌인 스톡턴 가의 본가가 있던 곳이자 새로운 신혼부부의 신혼집이다.
작가는 세 명의 여성을 내세워 삶과 재산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
책 속에 나온 파인애플의 상징적 의미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다.
이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은연 중에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결혼의 방식은 우리도 흔히 하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하기를 바란다.
결혼 전에 혼전계약서를 만들어 사인하기 바라는데 이 때문에 생긴 문제도 나온다.
혼전계약서 문제는 두 여성의 삶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용한다.
평범한 중산층에서 자란 사샤는 이런 계약서 자체가 결혼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고 불쾌해한다.
반면에 스톡턴가의 장녀 달리는 남편에게 혼전계약서를 쓰게 하지 않게 한다.
이로 인해 그녀는 신탁자산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달리의 남편이 한국계 이민자 2세란 것이다.
달리가 첫째를 낳고 바로 직장으로 복귀하는데 시어머니가 큰 도움을 주었다.
세 여성은 주어진 환경과 살아온 길이 너무 다르다.
사샤는 중산층에서 자라 자신이 바라는 바에 한 걸음씩 다가간 인물이다.
달리는 좋은 대학 졸업 후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가다 맬컴을 만난 출산 후 가정주부가 되었다.
조지애나는 20십대 중반으로 NGO단체에서 일하지만 특별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달리와 조지애나는 사샤가 처음 혼전계약서에 사인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녀를 ‘꽃뱀’으로 불렀다.
그들이 태어나면서 가진 시각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들 중 하나다.
거대한 부가 주는 안락함과 평화는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 세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지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가 학교 경매 장면이다.
말도 안 돼는 물건을 낙찰받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수천 불 혹은 수만 불을 지급한다.
사샤는 결혼해 시부모들이 살던 집에 들어왔다. 시부모는 다른 집으로 이사갔다.
그런데 이 거대한 집은 스톡턴가의 사람들이 사용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사샤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집을 꾸미는 것이 불가능하다.
남편 입장에서는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살던 곳이라 익숙하겠지만 그녀는 아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그녀가 스톡턴 가족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달리는 혼혈인 두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들을 보고 혼혈 아기들이 귀엽고 예쁘다는 표현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냥 귀여운 아이들이 아닌 특이하고 이국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트린다.
그리고 남편이 실직했을 때 있었을 듯한 인종차별 문제 때문에 가슴 아파한다.
남편의 실직은 그녀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가계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사랑과 낭만으로 거부한 혼전계약서가 머릿속 현실로 자리잡는다.
조지애나는 단체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 남자가 바로 유부남이란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고도 그녀는 결코 헤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남자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는다.
이때의 상처와 고통이 그녀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재밌는 점은 스톡턴 가의 두 딸이 자신들의 비밀을 사샤에게만 털어놓은 것이다.
맬컴의 실직, 불륜과 그 남자의 죽음 등, 그리고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는 여기서 두 딸이 사샤에게만 털어놓은 것을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처음 이 문장을 잃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지금은 끄덕인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조금 평범한 마무리이자 미국의 변화 일부를 다룬 것이다.
미국 상위 1% 부자들의 삶을 살짝 엿보는 재미와 더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