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릿길을 셔벗셔벗 - 신미나 한뼘일기
신미나(싱고)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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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의 한뼘일기란 부제가 붙어 있다.

한뼘시로 연재한 것을 한뼘일기로 바꾸어 출간했다.

시와 웹툰을 접목한 시툰으로 호응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나에게 낯설다.

하지만 SNS에서 보고 읽기 최적화된 형식이란 것은 알겠다.

단구나 동요 같은 간결한 형식에 계절의 변화와 감미를 담은 기록”을 한뼘일기라고 정의한다.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글인 경우도 있지만 더 덧붙이면 시가 될 것 같은 것도 있다.

시로 가기 위한 에센스”라는 표현도 읽는 내내 공감했다.

24절기를 제목에 그대로 쓴 것은 그날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사계절로 나누어 편집되어 있다.

겨울에서 시작해 가을에서 끝난다.

솔직히 말해 그냥 휙 읽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림도 많고, 그 속에 담긴 한뼘시도 길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지 않은 한뼘시와 그림에 눈길이 오래 머무르는 순간이 있다.

시인의 감성을 그대로 보여준 시어와 관찰 때문이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마음을 주어야 쓸 수 있는 표현들이다.

읽기 쉽다고 그 시어들이 쉽게 나온 것은 아니다.

가끔 읽다가 나의 과거가 떠올라, 놓치고 있던 것들이 생각났다.


간결한 표현이기에 경험이 끼어들 공간이 많다.

손이 찬 당신이 /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쌀 때 // 따뜻한 밥뚜껑 위에 / 손을 올려놓을 때”

(<둘이서 첫눈> 부분)

나는 새로 핀 동백이 예쁘다 말하고 / 할머니는 떨어진 동백이 아깝다 하시고”(<눈길>전문)

내가 알 보일 때까지 / 잘 가라고 / 잘 가라고 손 흔든다” (<억새> 부분)

다 읽은 후 대충 훑으면서 찾은 한뼘시이지만 같은 경험의 기억이다.

어떤 대목은 너무 흔한 장면이고 익숙한 표현이지만 그림과 엮이면 더 좋다.

시인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소녀와 반려묘의 모습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동시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

옥수수 한알이 / 한살이라면 / 수염 난 옥수수는 / 이백살 하아버지”(<옥수수> 부분)

엄마가 가져간 / 세뱃돈은 / 어디로 사라지는지”(<알쏭달쏭해> 부분)

내가 컬링 경기 보면 / 밀대 가져와서 / 바닥을 문질문질”(<따라쟁이> 부분)

이 한뼘시를 읽으면서 잠시 동심을 느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24절기를 간결하게 표현한 시어들도 공감한 대목이 많다.

눈 쌓인 / 지붕마다 // 커다란 백설기 / 한채”(<대설> 전문)

보드륵, 자륵 / 눈 밟는 소리는 / 덮지 못한다”(<대한> 부분)

남새밭에 / 고추 따러 간 엄마 / 김매고 계신다”(<소서> 부분)

서릿길을 / 셔벗셔벗”(<상강> 부분)

간결함과 경험, 의성어 등이 멋지게 연결되어 나의 마음을 흔들고 먼 곳으로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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