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둔의 기억 1 - 제1부 저항군, 제1권 수색
라우라 가예고 가르시아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엄청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성장통을 다룬 판타지라는 평에 혹했다. 독일의 한 독자가 ‘해리포터’나 ‘에라곤’과 비교한 것은 개인적 취향이니 무시하고 책에만 집중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해설을 보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서인지 보는 내내 일본 애니의 느낌을 받은 대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설정이나 전개에서 그런 분위기가 많이 느껴졌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런 느낌은 많이 사라지고 그녀가 만들어낸 세계에 빠져들었다.

 

판타지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설정과 캐릭터는 중요한 요소다. 세 개의 태양과 세 개의 달이 있는 행성 이둔은 사실 특이한 곳이 아니다. 이미 다른 작가들이 이와 유사한 행성을 설정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과 뱀의 대결이라는 구도는 상당히 특이했다. 여섯 종족보다, 차원을 통해 다니는 마법사보다 셰크라는 종족이 더 시선를 끌었다. 유니콘이란 존재가 마법의 존속을 위해 존재한다는 설정은 용과 더불어 이 소설의 핵심이자 재미난 부분이기도 하다. 또 거대한 악의 세력과 대결하는 저항군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스타워즈’가 생각난 것은 나뿐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은 잭과 빅토리아와 키르타슈다. 물론 잭과 빅토리아를 성장하게 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알산과 샤일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을 이 세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각관계. 이둔을 점령한 아슈란으로부터 지구로 도망 온 마법사를 처치하라는 명령을 받은 가공할 능력의 소유자 키르타슈와 치유능력과 조그마한 마법을 지닌 빅토리아와 자신도 잘 모르는 불과 관련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잭 이 세 명의 아이들의 갈등과 증오와 사랑은 어느 부분은 유치한 대목도 있지만 책의 중심이다. 그러나 초반에 너무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 조금은 당혹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의 나이나 상황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삼부작의 초반이라 그런지 규모면에서 진행면에서 거대한 부분은 없다. 앞의 세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과 충돌이 대부분 그려지는데 이 때문인지 속도감은 상당하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성적 판단으로 재단하기는 어려움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빅토리아가 느끼는 잭이나 키르타슈에 대한 감정은 나 자신도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모르겠다. 후반에 가면서 이를 위한 장치들을 보여주지만 쉽게 동의하기는 나의 머리가 너무 굳어있다.

 

표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읽었는데 모두 읽은 지금 상당히 의미심장한 그림이다. 1권보다 2권의 표지 그림은 많은 것을 뜻하는데 오해를 하게 만들지만 어쩌면 가장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법과 검술을 다루고 있지만 현재의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행성과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공간과 시간에서 활동하고 충돌한다.

 

성인 대상의 판타지가 아닌 청소년 대상이라서인지 이전에 보았던 한국무협이 생각나기도 한다. 성인의 능력을 한참 뛰어넘는 청소년들이라는 설정이 낯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한국무협이 내면으로 파고들기보다 판타지의 설정에 치중했다면 이 소설은 비교적 내면도 충실히 그려낸 것이다. 이 부분이 성장통이라는 표현이 가능하게 만들지 않았나 한다.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사건과 갈등과 사랑 등이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리고 예언과 자신들의 임무를 위해 이둔으로 가는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모험과 활약을 예고하기도 한다.

 

얼마 전 읽은 한국판타지 ‘아돈의 열쇠’라는 판타지가 생각난다. 이 판타지가 엄청난 설정과 캐릭터를 보여주었지만 흥행에 실패하였던 것을 기억하는 나에게 대형 출판사와 외국 판타지 소설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들고 온 이 소설이 흥미를 자극한다. 흥행에도 더 성공할 듯하다. 작품의 완성도나 설정의 거대함 등에서 ‘아돈의 열쇠’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그 대상이 청소년이 아니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려울 것이다. 이 소설은 어른도 쉽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해리포터를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도 열광하지도 않는 나지만 오락적 요소나 설정에서 해리포터를 능가한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 대한 마지막 평가는 삼부작의 끝을 보는 순간 어떻게 변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알게 모르게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