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토피아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
조영주 지음 / 요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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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세계로 간다는 설정에 혹했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탄 후 정해진 순서대로 각 층을 이동한다.

이동하는 사이 아무도 타면 안 되고, 중간에 젊은 여자가 1층을 누른다.

이때 1층으로 가지 않고 10층으로 올라가면 이세계에 도착한다.

이 설정은 웹소설에서 흔히 보는 무한전생의 또 다른 버전이다.

그리고 처음 이 실험을 한 아이는 현우였지만 실제 이세계로 가는 아이는 9살 소원이다.

소원이는 엄마의 학대를 받고 있고, 현우의 작은 도움을 받았다.

현우가 실패한 이세계 여행을 소원은 자신도 모르게 성공한다.

소원은 대입에 실패한 형의 집에 들어가 동생으로 삶을 이어간다.

형은 정신을 차려 대입에 성공하고 삶의 방향이 바뀐다.


소원은 다시 이세계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엄마가 처음 전세 계약을 하던 시점으로 이동한다.

소원이 아동학대를 받는 원인 중 하나가 엄마의 남친이 전세금을 들고 도망간 것이다.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은 엄마는 소원이 낯설고 불쌍해 보인다.

아이는 사기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두 번째 삶을 사는 소원은 경찰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경찰과 엄마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행복하지만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소원. 그를 지켜보는 새로운 부모.

한 번 다른 삶을 살았던 소원은 자신이 사는 진정아파트의 붕괴를 알고 있다.

이 붕괴를 막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번번히 이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그의 삶은 다양하게 이어지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아니다.


소원이 가는 이세계는 진정아파트 호수와 연결되어 있다.

아파트의 붕괴를 막으면 이 타임루프가 멈출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파트를 없애고 원래 있는 호수로 만들어도 멈추지 않는다.

그가 경험하고 살았던 시간이 수백 년이다.

지식이 점점 쌓여가고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새로운 삶의 피로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시간의 한계 속에서 삶을 반복해야 하는 고통은 쉽게 사그라들 지 않는다.

그러다 하나의 단서를 발견한다.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 같은 인물의 발견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소설가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주 많은 삶을 산 그가 읽지 않은 소설들을 보면서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독성이 아주 좋고, 다음 삶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웹소설 같은 액션이나 긴 삶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짧은 글 속에 그 흔적이 보인다.

너무 많은 삶을 경험한 부분과 흔히 말하는 반복되는 상실의 무게가 약하게 표현되어 있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 많은 이야기를 넣을 수 없겠지만 살짝 한두 번 정도 그런 삶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웹 판타지의 극단적인 상황을 너무 즐기는 것일까?

이 무한 반복의 삶을 보면서 한 번의 기회에 대한 절실함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 속에 노회하고 성숙해지는 모습도 약해 조금 아쉽다.

멈추지 않은 삶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고, 이 기억들을 가진 채 원래의 세계로 가면 어떨까?

시간이 인간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물음도 같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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