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는 세계
김아직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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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노비스 탐정 길은목>을 재밌게 읽었다.

이번 소설은 두 번째 작품인데 전작보다 좀더 안정적인 문장과 구성이다.

이야기를 확장하지 않고 좁혀 놓고 풀어가는데 이것이 흡입력을 발휘한다.

전작과 이어지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이번에도 천주교가 이야기 중심에 있다.

한국에서 천주교가 그렇게 대세인 종교가 아닌 것을 감안하면 살짝 의문이 생긴다.

왜 계속해서 노비스와 천주교 사제 등을 이야기에 중심에 놓을까 하고.

이 세계에서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닮았다는 부분을 파고들었기 때문일까?

이것은 기독교에서도 같이 다루어야 하는 부분일 텐데.

어쩌면 제이처럼 나도 작가의 세계관에 홀려 여기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은퇴한 노신부 레미지오는 비오는 어느 날 밤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병자성사를 구하는 신도 루치아의 전화다.

노구를 이끌고 빗속을 달려 루치아에게 성사를 집전한다.

그런데 이 루치아가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란 것을 알게 된다.

레미지오는 이 성사가 무효라고 말하지만 루치아는 예식 그 자체로 유효하다고 말한다.

절망한 레미지오는 이 사실은 유안석 몬시뇰에게 알린다.

안드로이드가 병자성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안석은 이 안드로이드를 찾아내고 파괴하길 바란다.

이 일을 카톨릭 정보국에 있는 자신의 수하 제이에게 명령한다.


제이는 사제 수업을 받는 동생과 병실에서 연명치료를 받는 엄마가 있다.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는 이 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받친다.

첫 번째 명령은 사라진 루치아의 정체와 있는 곳을 밝혀내는 것이다.

노신부를 만나 그날의 현장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사 방향을 정한다.

정보국 자료를 바탕으로 프로파일링과 탐문조사를 통해 루치아의 정체를 파악한다.

이 과정에서 제이가 보여주는 능력과 그녀에게 가해진 금제는 강한 인상을 끈다.

몬시뇰은 정확한 확인을 원하고, 사실 확인을 하기 전까지 시간 제한은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한다.

이 이야기의 전반부는 이렇게 사라진 안드로이드 루치아 찾기도 이어진다.


교조적인 교회는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의 제작을 반대한다.

신이 아닌데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를 제작하는 것은 신과 같은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안드로이드가 천국을 꿈꾼다는 것은 불경하고 말도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안드로이드를 새 시대의 마녀로 규정하고 처벌하기 바란다.

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에 과거의 종교적 악령이 꿈틀거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가르는 기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통해 또 다른 시각을 얻게 된다.

앞에 깔아 둔 복선은 작은 균열에 의해 더 벌어지고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재밌게 끝까지 읽었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면 역시 고전 sf소설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녹슬지 않는 존재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강한 액션이 포함된 장면들은 짧지만 강렬하고 개인적 취향에 맞다.

루치아 등을 쫓아가는 과정 또한 세밀하게 잘 가꾸어져 있다.

이런 장점들이 잘 엮여 있지만 왠지 모르게 깔끔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작가가 다루고 있는 세계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일까?

아니면 마지막 장면이 너무 비슷했기 때문일까?

앞으로 이 세계를 공유한 소설이 더 나온다면 아쉬움을 더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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