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 세상이 멸망하고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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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김이환의 장편 소설을 읽었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도 많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최근에는 단편집에서 주로 그를 만났는데 내가 기대한 것과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장편은 기발한 전개와 상황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수면 바이러스에 의해 팬데믹이 온 것은 코로나 19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실제 ‘세상이 멸망하고’란 단서가 붙어 있지만 아직 사회 기반 시설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조금 황당했지만 이 독특한 설정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과 웃음을 주었다. 

 

수면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된지 3년이 지났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고 잠만 잔다. 

이 때문에 사회의 온갖 시스템이 멈추고, 사람들은 규제로 인해 집안에만 머문다. 

정부가 이들을 위해 식량과 물품을 드론으로 공급한다.  

그런데 이 물품 공급이 어느 날 중단되었다.  

인터넷에는 이 수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소심한 사람들이란 가설이 뜬다. 

자신이 소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댓글을 달아달라고 하지만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배고픔은 나가 식량을 구할까? 말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정부에서 나가지 말라고 한 말에 소심함이 작동해 주저한다. 

이때 한 여성이 박스를 들고 가는 모습을 본다. 배고픔이 이겼다. 

 

선동이 나나를 만난 것은 배급을 위해 가는 중이었다. 

나나는 배급소 직원이었는데 드론 운영하는 분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어쩔 수 없이 직접 배달한다. 

이렇게 소심한 두 남녀가 만났고, 소심해서 배급 목적지까지 같이 간다. 

아이가 있는 집에 배급품을 놓아두고 나오고, 또 다른 집에 배달을 간다. 

반지하에 살고 있는 여중생 덕후 지우네 집이다. 

선동에게 갈 배급품은 없다. 앞에 배달한 것이 전부다. 

이때 나나가 편의점 이야기를 한다.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외상 장부에 적어놓고 물건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소심한 남녀는 편의점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을 가진다. 

 

지우는 좀비 아포칼립스처럼 상황을 말하지만 이곳엔 좀비가 없다. 

도시는 고요하고, 움직이는 사람조차 그들 이외는 없다. 

지우의 이런 행동은 나중에도 반복된다. 좀비 아포칼립스의 영향 때문이다. 

이런 캐릭터는 다른 소설이나 애니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 소심한 세 남녀가 함께 다니면서 이들의 활동 공간은 더욱 넓어진다. 

다른 소심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관계를 맺어간다. 

어떻게 보면 이런 설정과 단계들이 기존 판타지 세계의 퀘스트와 레벨업과 닮았다.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1단계라면 편의점은 2단계다. 

3단계 마트에 가는 일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곳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서운 복장을 하고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들만 살아남은 세상에서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없다. 

이런 사실을 워리어스 중 한 명이었던 영만을 만나면서 알게 된다. 

편의점과 달리 마트는 더 크고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아무 물건이나 가져가도 되는데 소심함 때문에 쉽게 가져가지 못한다. 

가져 갈려고 하다가도 이 부분을 지적하면 내려놓는다. 

이런 아포칼립스 세계라면 나처럼 소심한 사람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소심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모였을 때 그 소심함은 또 다른 재밌는 장면을 만든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런 현실에서도 전기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되고, 병원이 운영된다. 

선동의 세계가 점점 넓어지면서 설정이 하나씩 덧붙여진다. 

굉장히 평온한 세상을 관조하는 느낌인데 재밌다. 

음모론이 나오고, 백신 개발도 이루어지는데 미래는 어떨지 모르겠다. 

소심한 사람들의 소심한 마음과 자잘한 행동 등이 나의 가슴에 와 닿는다. 

자극적인 종말론 세계와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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