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너희 세상에도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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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하의 세 번째 단편 소설집이다.

이전에 나온 단편집은 아직 읽지 못했다.

이번 단편집을 읽고 관심이 생겼는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다.

최근 이런 작가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읽어야 할 책들은 더 높이 쌓여간다.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작가의 말’에서 살짝 맞을 때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여덟 편의 단편 중 한 편 <화면공포증>은 다른 앤솔로지에서 이미 읽은 소설이다.

최근 앤솔로지를 자주 읽게 되면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앞에서 살짝 맞았다는 표현을 쓴 소설은 <에이의 숟가락>과 <이름 먹는 괴물>이다.

<에이의 숟가락>에서 에이가 답이 정해진 수학을 좋아한다는 표현 때문이다.

이 단편에서 에이가 주운 숟가락은 가공할 살인 도구이자 뒤틀린 욕망을 대변한다.

너무나도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이 숟가락은 그녀의 소유욕을 살인으로 나타난다.

이 감정이 극대화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임신했을 때 드러난다.

<이름 먹는 괴물>은 이름을 부르는 죽는다는 게임을 한 학급 내에서 판타지로 구현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학급에 떨어지고, 이름이 불린 학생이 이 괴물에게 먹힌다.

또 다른 이름이 불리면 그가 괴물에게 끌려가 이전 아이와 합쳐진다.

생존을 위해 이름을 부르지 말자고 하지만 조그만 갈등이 이것을 깨트린다.

이런 게임에서 가장 유리한 학생은 누굴까? 당연히 이름도 절 기억나지 않는 학생이다.


<반짝이는 것>은 <다이웰 주식회사>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변형 좀비 바이러스가 감염된 아버지와 그 아들 부부의 이야기가 아주 씁쓸하다.

기존 좀비처럼 사람을 마구 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의식의 일부가 점점 사라진다.

다이웰 주식회사에 가서 안락사를 시킬 수 있지만 아들 부부는 돈 때문에 하천에 유기한다.

유기된 아버지가 편안한 죽음을 위해 찾아간 곳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더 비참하다.

<뇌의 나무>는 탐욕의 비극을 간결한 이야기 속에서 보여준다.

누구나 향유할 수 있던 지혜와 사랑의 감정을 독재자가 독점하려고 하면서 생긴 비극이다.

가지지 못하면 파괴하려는 모습은 에이의 행동과도 닮아 있다.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는 기시감과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어느 날 갑자기 기시감을 느끼는 남자. 선택의 기로에서 기시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정과 기시감과 선택의 문제가 엮이고 꼬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지막 장면은 황당하지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나의 선택은 어떨지 궁금하다.

<목소리>를 읽으면서 <전지적 독자 시점>의 오프닝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나. 물론 세부적인 설정은 다르다.

죽이지 않으면 갑자기 죽는다. 이렇게 죽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차로, 칼로, 다른 도구를 이용해 죽이려고 달려든다.

이 잔혹한 세계에서 삶에 대한 욕망이 이성을 마비시킨다. 부부사이도, 혈연관계도 없다.

이 설정은 좀비 소설의 변형처럼 느껴진다.


표제작 <부디 너희 세상에도>는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순간을 그린다.

주인공은 인기 없는 소설가. 창작 아이디어가 번쩍이는 곳은 목욕탕.

이 곳에 침입한 좀비 한 명. 이어지는 감염. 그런데 주인공의 인식과 세계가 이상하다.

주인공이 소설 속 인물이란 자각이 들고, 창작자의 의지가 들려온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차원을 넘어 가면서 제목에는 생략된 부분이 서늘함을 전한다.

이렇게 이 단편집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욕망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히 읽으면서 ‘나의 상황이라면’이란 가정을 할 수밖에 없다.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이 단편집,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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