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논드호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지혜 지음 / 몽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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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땅이 모두 사라진 후 이야기다.

인류는 19척의 거대한 배를 타고 지구를 부유하면서 살아간다.

그 19척 중 한 척인 다마논드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설정만 놓고 보면 SF, 디스토피아 소설에 미스터리를 가미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현실과 너무나 닮아 있다.

생존을 위해 건조한 배는 거대한 계급 사회를 이루고 있고,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보다 종교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도 재밌는 점이다.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SF 소설을 빌려 왔지만 솔직히 이 부분은 약하다.


지구가 물에 잠긴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마논드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땅이란 것이 있는 것을 믿지 않는다. 아니 모른다.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바다에 떠있는 배이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작가가 이 19척의 배가 얼마나 거대한지 설명한 부분을 읽고 의문에 잠긴다.

3백만 명을 태울 수 있는 배라면 그 자체로 하나의 땅이자 거대 도시가 아닐까 하고.

이 정도로 거대한 배를 건조할 기술이 있다면 우주로 나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처음 머릿속에서 다마논드호의 크기를 거대한 유조선 정도로 생각한 나의 상상력을 비웃는 크기다.

하드 SF 같으면 이 배의 구조나 규모 등의 설명으로 엄청난 분량을 뽑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배의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이 거대한 다마논드호에서 희망이 없는 공간이 37 주거 단지촌이다.

이 37 주거 단지촌 출신인 산도는 자신이 왜 수호그룹에 선택되었는지 모른다.

이때 몬구라는 학생이 전학을 온다. 그도 37 주거 단지촌 출신이다.

이 37 단지촌은 가장 밑바닥 인생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생존을 위해 음식물 쓰레기조차 먹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이런 곳 출신인 산도는 이 수호그룹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자신의 위치를 가장 낮추고, 그 존재감을 최대한 지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산도와 몬구가 왜 수호그룹에 오게 되었는지 알려줄 때 이 배의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한정된 공간, 제한된 생산물, 권력의 독점 등은 과거의 한 시점과 닮았다.

보통의 사람들이 좁은 곳에서 살아갈 때 부유한 권력층은 넓은 공간을 향유한다.

이 공간을 관리하기 위해 하층민 사람들을 하인처럼 부린다.

삶이 나아지지 않을 때 민중들은 가끔 봉기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강력한 무기와 하수인 앞에 쉽게 무너진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연대한 봉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구조다.

권력자들은 이런 민중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용왕과 왕부란 허구를 확대 재생산한다.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왕은 신이고, 왕부는 신의 대리인이다.

권력자들도 왕부를 우대하는 것처럼 보여주지만 그 속내는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하층민 계층에서 뽑아 왕부로 만든다.


37 단지촌 출신 마요는 산도의 비밀을 알고, 수지라는 연인이 있다.

둘은 결혼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았다. 수지의 임신은 알려지면 낙태로 이어진다.

몰래 이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산도의 비밀을 가지고 선장을 위협하지만 선장도 상류층의 일원일 뿐이다.

어린 마요를 통해 37 단지촌의 현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사실에 눈을 감고 있다.

하층민들은 상류층으로 나아가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막혀 있다.

바다가 정화되면 땅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지만 권력자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신들의 권력이 영원히 다마논드호에서 유지되길 바란다. 바다로 배의 쓰레기를 밤에 몰래 흘린다.

왕부 교체기가 되면서 구 왕부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벌이는 행동은 또 어떤가.

출생의 비밀과 권력에 대한 욕망과 생존 본능 등이 엮이고 꼬인다.

많은 SF 소설에서 다루었지만 기득권, 불평등, 불합리, 불공정 등의 문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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