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팩토리나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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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나온 <너의 이야기> 재출간본이다.

출간 당시 재밌게 읽었는데 신간인 줄 알고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여전히 가독성과 리듬 좋은 문장과 담담한 전개가 나를 사로잡는다.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이전에 쓴 서평을 찾아보니 ‘일본 사소설’과 <토탈 리콜>이 나온다.

‘토탈 리콜’을 패리디한 ‘파셜 리콜’이라는 장도 눈에 들어온다.

사소설은 이야기를 확장시키지 않고 치히로와 도카에게 한정해서 자신의 감정을 계속 파고든 부분 때문이다.

실제 치히로가 만나는 사람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외톨이에게 ‘그린그린’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치히로가 먹기를 바란 것은 기억을 잃게 하는 ‘레테’인데 청춘의 추억을 담은 ‘그린그린’이 왔다.

자신이 먹은 의억 ‘그린그린’의 영향으로 일상에 작은 틈새가 만들어진다.

가공된 기억이 현실을 침범한다. 일상을 파고든 이 의억이 그를 혼란스럽게 한다.

잘못 배달된 것을 알고 다시 ‘레테’를 받는다. 이 레테를 먹으면 도카의 기억이 사라진다.

바로 먹으면 되지만 그는 이 청춘의 기억을 즐긴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레테로 그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그의 일상에 실제 도카가 나타난다. 환상일까? 아니면 사기꾼?

이때도 레테를 먹으면 이 기억을 지울 수 있지만 그는 그녀의 실존 여부를 확인하고자 한다.


만들어진 기억을 작가는 의억(義憶)이라고, 그 대상을 의자(義子)라고 한다.

‘그린그린’은 나노로봇을 이용해 만들어낸 이상적인 청춘의 기억이다.

이 기억 속에 등장하는 여성 도카는 당연히 ‘의자’다.

현실에서 그녀가 치히로 앞에 나타났다. 이 여성은 그럼 누구란 말인가?

잘 알지 못하는 동창을 만나고, 졸업 앨범 등을 뒤져 보아도 도카란 이름은 없다.

그녀는 왜 도카라고 말하면서 그의 곁에 머물고, 소꿉친구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작가는 독자에게 계속 물음을 던지고, 의문을 덧씌운다.

그리고 둘은 진짜 소꿉친구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때의 감정은 사실이다. 이 시간도 진짜다. 도카가 사라진다.


나노로봇으로 기억을 만들어 그 의억을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미래다.

치히로가 레테를 먹으려고 한 이유도 그의 가정사가 한몫했다.

유일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은 멋쟁이 학교 선배 에모리다.

둘은 술을 마실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산 술을 마신다. 특이하다.

이런 일상을 파고든 도카. 그린그린이라는 의억.

그의 일상은 점점 고요하게 썩어가는 중이었다. 만약 도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처음 읽을 때 이 모든 것은 머릿속 환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다시 읽으면서 그의 감정이 조금 더 가슴에 다가왔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난 후 그 장면은 어딘가에서 본 듯하지만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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