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스프 리플렉스
김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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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슨 뜻인지 몰라 검색했다. 파악 반사(把握 反射)라고 한다.

“신생아의 손바닥을 검사자의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꽉 붙잡는 반응으로 원시 반사의 일종이다.”

어떤 점 때문에 작가는 이 제목을 사용한 것일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공 장기를 단 노인들이 가지는 욕망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노인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 아들의 욕망을 말하는 것일까?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들의 힘은 더 강력해진다.

책 후반부에 이 노인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부조리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의학의 발달로 점점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의 근미래다.

최만식은 노인 관련 산업으로 거대한 부를 이루었고, 인공 장기를 달고 살아간다.

인공 폐를 다는 수술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납치되었고 그는 시체로 발견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과 그 이면을 천천히 다룬다.

만식의 죽음으로 남은 사람들의 이해가 엇갈린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노인이지만 자식은 단 한 명이다. 오십 대의 아들 최필립이 유일하다.

내연녀의 배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지만 아직 법적 관계는 아니다.

그의 돈에 기대 승승장구한 국회의원 영권은 자금줄이 끊어질 수 있다.


작가는 여기서 두 개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나는 만식의 인공 장기 적출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 이야기가.

형사들은 이 살인 사건에 외압까지 받으면서 수사하지만 단서가 충분하지 않다.

CCTV에 남겨진 영상조차 없어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가능성은 고액의 인공 장기가 시장에 흘러나와 그 단서를 따라 가는 것이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그러다 노인을 위한 나라에서 노인 아닌 환자에게 생기는 문제가 흘러나온다.

단지 젊다는 이유로 노인들보다 훨씬 비싸게, 혹은 늦게 구입해야 하는 현실이 나온다.


만식의 죽음으로 가장 이익을 보는 사람이 범인은 분명하다.

당연히 일순위는 아들 최필립이다. 그의 과거 가족사는 불행으로 가득하다.

형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물에 빠진 후 그만 홀로 살아나왔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어머니도 함께 간 제주 여행에서 의문의 실족사를 당해 죽었다.

오십 중반의 나이가 다 되도록 그는 아버지 회사의 전무에 머물고 있다.

자신의 부를 나누어 줄 생각도, 자신의 지위를 넘겨줄 생각도 없는 아버지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내연녀를 집안에 들이고, 임신까지 시킨다.

인공 폐까지 달고 2~30년을 더 살게 되면 그의 나이도 70대다.

이런 현실은 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노인들의 자식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읽다 보면 현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국민기본소득을 막고 노인기본소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나온 정치 문구가 대표적이다.

정책의 대부분이 노인 복지에 맞추어져 있다. 그들의 한 표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작가는 세부적으로 더 깊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 이 문제를 적절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중위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어갔는데 이것이 출생률 감소와 맞물리면 어떻게 될까?

아마 더 높아질 것이다. 젊은 세대가 지고 가야 할 노인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런 문제를 과격하게 다룬 일본 소설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노인들이 흔히 하는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했어. 지금은 보상을 받는 거지.” 같은 대사를 보라.

그들이 일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더 많은 보상으로 누리고, 우선 순위를 자신들에게 주는 현실을.

역시 가독성이 좋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드러날 세대 갈등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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