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8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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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비디오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남아있는 나날>을 봤다. 완전히 빠져들었다.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 두 사람의 미묘하고 섬세한 심리 표현와 연기에 감탄을 하면서 봤다.

감독은 제임스 아이버리였다. 대단한 연출이었다.

이때만 해도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 당시 한참 다니던 중고책방에서 이 소설을 찾고, 바로 샀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읽지 않고 가지고만 있었을 것이다. 원작을 각색한 영화의 다른 소설들처럼.

그러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에 점점 빠져들었고, 작가는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이제는 영화에 대한 기억들이 많이 희미해졌다.

세부적인 것들은 거의 날아갔고, 그때의 감동만 연기와 연출로 이어져서 남아 있다.

처음 책을 펼치고 읽으면서 걱정했던 것들은 저질 기억력과 함께 완전이 날아 갔다.

그리고 완고한 집사 스티븐스의 고백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작가는 단순히 스트븐스의 고백만을 풀어놓지 않고, 그 시대의 국제 정세 등과 엮었다.

이것은 스티븐스이 모신 달링턴 경이 정치에서 맡았던 일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표현된다.

영화로 볼 때는 이 부분은 그렇게 신경쓰지 않은 것인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1956년 7월 달링턴 홀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달링턴 경은 3년 전에 죽었고, 이 저택은 미국 부자 패러데이가 인수한다.

집사 스티븐스는 패러데이 어르신의 말 대로 며칠 간의 휴가를 떠난다.

이 휴가의 목적은 켄턴 양을 만나는 것이다.

평생을 ‘위대한 집사’가 되고자 한 그의 삶이 여행하는 동안 교차하면서 펼쳐진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완고함과 대단한 직업의식이 먼저 강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총무인 켄턴 양과의 티격태격하면서 조금씩 쌓아가는 감정들이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둘만의 은밀한 감정 교류가 소설에서는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아쉽다.

하지만 그 대신 스티븐스가 풀어내는 20~40년대의 영국 정치와 사회상이 더 부각되어 나타난다.


그의 직업 의식은 정말 대단하다. 아니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한다.

그의 아버지가 죽을 때 그는 집사 일을 위해 임종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켄턴 양과의 관계에서도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다.

자신의 감정을 미묘하게 표현한 장면에서, 특히 영화에서 이 부분은 감탄을 자아낸다.

켄턴 양의 이모가 죽은 날 그가 보여주는 갈팡질팡하는 장면은 그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너무 잘 알고, 그 위치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그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잘 모른다고 말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상대방이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다. 이런 일은 소설 곳곳에서 일어난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난 뒤 감상을 요약하여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여운이, 이전에 본 영화와 엮였을 때는 더 힘들다.

영화의 이미지가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원작을 읽을 때 그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좋은 감독과 배우가 멋지게 만들어낸 영화일 경우에는 더욱더.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소설은 또 많이 보여준다.

스티븐스가 운전하면서 보는 풍경과 만난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그가 달링턴 홀에서 모신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이다. 훨씬 인간적이고 따스하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억제하면서 살아야 했던 집사란 직업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직 이 작가의 소설 중 읽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영화를 다시 본다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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