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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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마약. 이 둘은 우리의 인식 밖에서 항상 머물러 있었다.

전쟁 중 얼마나 많은 마약이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자료는 아직 없다.

어느 정부나 이런 사실을 통계적으로 정확하게 알려줄 자료를 남겨 놓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전쟁에서 각성제가 얼마나 많이 사용되었는지 알게 된 것은 한 액션 스릴러 소설 덕분이다.

수시로 찾아오는 잠과 싸워야 하는 군인들에게 각성제는 순간적으로 최고의 선물이다.

베트남 전쟁이 얼마나 많은 마약 중독자를 만들었고, 그 산업을 키웠는지 많은 책에서 말한다.

이 책은 그 이전 2차 대전 독일이 이 마약을 어떻게,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알려준다.


나치는 대외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나치는 자신들이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독일군은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마약을 수시로 이용했고, 전쟁 초기 이것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약은 많은 사람에게 전쟁터의 이상적인 동반자였다.”는 표현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 유명한 전격전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 중 하나가 ‘각성제’였다는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기동성과 장시간 진격은 단순히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초반 전차를 이용해 연합군을 완전히 궤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덩케르크 철수가 성공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가 히틀러가 잘못된 군사적 판단 때문이었다.

그 이면에는 다른 장군의 성공에 대한 질투와 권력 욕심 때문이다.


마약의 위험성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헤로인, 코카인, 메스암페타민이 주성분인 ‘페르비틴’이 출시되었을 때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었다.

이런 마약은 많은 직업군의 순간적인 효율성을 높여주었다.

문제는 중독과 내성과 이후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가장 깊숙하게 파고 든 것은 환자A로 불리는 히틀러의 사례다.

의사 모렐이 어떻게 히틀러의 주치의가 되었고, 그의 주사기가 히틀러에게 순간적 힘을 주었는지 보여준다.

이 부분은 잘 몰랐던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이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해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상당히 재밌고 흡입력 있다.


2차 대전 당시 히틀러가 보여주었던 열정적이고 활기 넘치는 행동은 모렐의 주사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초기 히틀러 사진과 후반부 히틀러 사진을 보면 아주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히틀러가 보여주는 편집증적인 행동과 점점 심해지는 약물 중독은 모렐의 주사기에 더 기댈 수밖에 없다.

전환점 중 하나가 바로 ‘옥시코돈’이란 아편 유사제를 사용하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히틀러는 점점 마약에 중독되고, 중요한 순간에 모렐에게 의지하게 된다.

대신 모렐은 권력의 핵심에 가까워지면서 엄청난 부를 쌓고, 자신의 바라는 바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모렐의 승승장구는 전쟁 마지막에 이르면 순식간에 몰락할 수밖에 없다.


마약 중독이 히틀러의 행동과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묻는다면 저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마약은 결코 결정의 자유에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항상 자기 의지의 주인”이었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심적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그렇게 많은 마약을 스스로 복용”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의지가 먼저고, 마약은 보조제란 의미다.

이것을 술이나 다른 문제로 연결하면 어떨까? 심신미약에 의한 면제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마약은 우리와 우리 시대에 이미 내재되어 있던 것을 강화했을 뿐이다”라는 말에 유념해야 한다.

마약으로 탈선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독일의 패전 후 수많은 연구 자료들이 미군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그 중에서 나치의 마약 실험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스릴러가 이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수히 많은 장르 소설에서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마약 등을 사용하는 것이 떠올랐다.

읽으면서 현실에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실제 있었다.

그 규모도 생각보다 크다. 잔혹성 면은 판타지 등이 더 심하지만.

그리고 이 책을 통해 2차 대전을 해석하는 또 다른 도구 하나를 손에 넣었다.

이 도구는 단순히 2차 대전 독일군에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아프리카 소년병 경우가 떠오른다. 마약 중독과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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