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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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위화의 장편소설이다.

1900년대 초 대격변기를 배경으로 민초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토비들이 각 지역을 돌면서 수탈하고, 학살하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혼란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 보여줄 때 놀란다.

함께 연대해서, 혹은 공권력에 기대 토비를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쉽게 사라진다.

정말로 공권력이 살아 있다면 이런 토비들이 마을에 들어가 그렇게 쉽게 사람들을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토비들이 보여주는 잔혹한 고문과 학살의 장면은 정면에서 마주보기 힘들 정도다.

  

소설을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린샹푸이고, 다른 하나는 샤오메이의 시선이다.

린샹푸는 북부 지역의 부농의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죽으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농지를 돌면서 관리했고, 좋은 목수들로부터 기술을 배웠다.

연목이니 경목이니 하는 목공을 배웠는데 이 기술로 큰 부를 이룬다.

하지만 이 기술로 부를 이루게 된 데는 그가 사랑했고, 그의 딸은 놓아준 아내를 찾기 위한 여정의 결과다,

그가 시진을 돌면서 젖동냥을 해 딸을 먹여 살렸는데 이렇게 하게 된 것이 아내를 찾기 위해서다.

시진에 머물게 된 데는 그 마을 사람들의 방언이 샤오메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샤오메이 등이 그곳에 오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린샹푸의 젖동냥에 큰 도움을 준 인물이 한 명 있다. 천융량이다.

오랜 시간 시진을 돌면서 젖동냥을 했는데 천융량 가족의 덕을 봤다.

폭설이 내릴 때 그 집에 머물면서 인연은 더 강해졌고, 함께 사업을 한다.

이 사업은 그들의 노력과 뛰어난 실력 때문에 크게 성공했고, 린샹푸는 번 돈으로 주변 땅을 산다.

그런데 어느 날 시진에 토비가 들어와서 린샹푸의 딸 린바이자와 마을 사람들을 납치한다.

이것을 본 천융량의 큰아들 천야오우가 대시 인질이 된다. 대단한 용기다.

이렇게 인질이 된 사람들은 나중에 군대의 전투 때문에 몸값을 전달하지 못하면서 귀 한쪽을 잃는다.

이때문에 생기는 에피소와 새로운 이야기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린바이자란 이름은 백가(百家)인데 백집의 젖동냥을 받았기에 지었다.

린바이자는 자라면서 엄마의 부재를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그것은 천융량의 아내 덕분이다.

토비가 극성을 부리자 린샹푸는 린바이자와 시진 대부호 구이민의 아들과 약혼한다.

그런데 이 구이민이란 아이가 대단한 난봉꾼이다.

그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왜 파혼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그 시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지금의 기준에서 본 것 때문이다.

대부호의 집에 여러 명의 처첩이 있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이런 린바이자가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이 때문에 또 다른 사건이 생긴다.

 

샤오메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린샹푸는 재혼을 하지 않는다.

그가 한 번 창부를 찾아가는데 그녀가 샤오메이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중에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 속 인연들은 이렇게 저렇게 이어진다.

토비를 둘러싼 이야기는 그 시대의 혼란상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읽을 수 있다.

잔인하고 잔혹한 토비와 그들 앞에 너무나도 무력한 민중과 무력한 공권력.

정면에서 본 토비의 모습은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들의 고문에 구이민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줄 때 현실을 깨닫게 된다.

이 일로 다른 사건들과 비극이 일어나는데 마지막에 눈시울을 붉혔다.

 

많은 분량이 린샹푸의 행적을 따라갔다면 ‘또 하나의 이야기’에선 샤오메이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가 오빠 아창과 린샹푸의 집에 나타나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그 먼곳에 왔는지.

딸을 낳고 떠난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데 먹먹한 감정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도시로 나오면서 마주하는 신문물을 바라보는 그녀와 아창의 시선은 신기하고 낯설다.

하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명확한 돈벌이도 없는 삶은 부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샤오메이가 린샹푸의 집에서 가져온 금은 마음에 진한 흔적을 남긴다.

언제 린샹푸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두고 온 딸에 대한 그리움 등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이전에 몰랐던 상황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들을 보고 아쉬움을 느낀다.

원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딘가에는 있겠지.”란 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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