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창비시선 477
이설야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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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77권이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나는 처음 이설야 시인의 시집을 만났다. 첫 인상을 간단하게 말하면 어둡고 무겁다.

책소개에 의하면 “독자에게 강렬한 희망의 이미지를 발신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느낌을 받지 못했다.

나의 오독일까? 아니면 나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간 것일까?

이 시집도 단숨에 읽지 못했다. 일정이 꼬이고, 생각보다 무거워 늦어졌다.

시인의 말을 읽으면서 “세상의 모든 시를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란 문장에 눈길이 간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노력과 열정은 사실일 테니까.

나도 한때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 싶지 않았던가. 지금은 포기한 일이지만.

 

시집을 읽을 때면 시어들이 머릿속에서 쉽게 휘발해버린다.

가슴에 강하게 남는 시는 작은 표시를 한다.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 않다.

점점 게을러지는 나에게 시집은 아주 잠깐 숨을 쉴 틈을 준다.

<붉은 달>에서 “달력을 찢다가 알았죠 / 내 얼굴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란 시어를 발견한다.

이 느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왠지 모르게 무섭다.

<밑>이란 시에서 “내가 먹던 알약들이 쏟아지는 밤”이란 문장을 보고 시인의 배경이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니 인천의 배경으로 한 시들이 많은 이유를 알겠다.

하지만 “나는 안녕해 / 네 슬픔의 밑바닥을 천천히 답사하는 중이야”(<밑>부분)를 읽으면서 다시 복잡해졌다.

안녕한 나와 슬픔의 밑바닥을 보여준 너의 관계가 궁금하다.

 

이 시집에는 <마트료시카>란 제목의 시가 두 편 있다.

처음 나온 시에서는 “죽은 지 오래된 얼굴들은 더 안쪽 깊은 곳에 있다”란 시어에 눈을 멈춘다.

한 번도 마트료시카를 보면서 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마지막 시에서는 “나는 문의 문을 계속 열고 나갔지만 // 어제의 얼굴을 다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에 멈춘다.

왠지 악몽이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아득한 과거의 어둠과 죽음.

“매일 다른 밤이 / 같은 내일을 데려온다”(<자세> 부분)에서 아득함이 먼저 다가온다.

매일 새로운 하루하루가 같은 결과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삶에 지친, 희망이 사라진, 폭력과 죽음에 노출된 사람들이 조금씩 보인다.

“시를 쓴다는 것이 어쩐지 죄를 짓는 것만 같구나”(<웅덩이, 여자> 부분)할 때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해설을 읽으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까?

어쩌면 단숨에 읽지 않고 긴 시간을 들여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가 많은 것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시집을 펼쳤을 때는 내일까지 다 읽겠다고 다짐했는데.

<봄의 감정>중에서도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과 달리 ‘죽은 등’, ‘검은 나뭇잎’ 같은 단어와 “언젠가 당신의 장례식 같은 / 봄의 감정들”이란 시어가 “꽃이 피지 않는다”로 이어진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이미지와 다른 곳에 눈길을 주고, 어둠을 들여다본다.

언젠가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이 표현도 늘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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