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원더
엠마 도노휴 지음, 박혜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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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작품 <룸>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이전 글을 찾아보니 12년 전이다.

그 당시도 피곤한 상태에서 읽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연말의 바쁜 일정과 욕심이 뒤섞였다.

작가 이름 하나만 믿고 선택했는데 올바른 선택이었다.

뛰어난 가독성과 뒤틀린 신앙과 신념이 어떤 일을 불러오는지 잘 보여준다.

많은 공간이나 다수의 등장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전작처럼 닫힌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그때보다 공간적으로 훨씬 넓다.


1850년 아일랜의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마을의 한 소녀가 몇 개월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생존하고 있다고 소문이 난다.

기독교 신자에게 기적의 상징이다. 이 소녀의 기적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리고 기자들이 찾아온다.

실제 이 소녀가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을 위원회에서는 관찰할 간호사를 찾는다.

그 간호사가 나이팅게일의 제자이자 노련한 영국 간호사인 리브다.

2주 동안 환자를 돌보면서 건강 상태를 체크해달라는 요청이다. 여기에 음식 섭취 확인도 같이.

그녀가 하루 종일 볼 수 없어 수녀원의 수녀도 한 명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리브는 과학적으로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먹지 않고 어떻게 몇 개월을 버틸 수 있을까.

금식 소녀 애나와 동거 가족들은 아이가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리브는 애나의 몸 상태를 매일 확인하고, 어딘가에서 음식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찾아본다.

하지만 아이는 물은 한 숟가락 먹고, 우유도 먹지 않는다. 발이 부었지만 다른 이상은 현재 없다.

아이의 기적을 보기 위해 이 집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있고, 그들은 돌아가면서 기부함에 돈을 넣는다.

부모가 이 돈을 노리고 아이가 먹지 않는 것처럼 꾸미는 것일까?

그럼 음식은 수녀가 함께 할 때 먹이는 것일까? 아니다. 수녀도 아이가 음식 먹는 것을 보지 못했다.

쉽게 생각하면 수녀도 짜고 먹지 않은 것처럼 꾸밀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리브의 과거, 전쟁의 기억, 나이팅게일의 제자. 점점 허약해지는 아이에 대한 연민.

과학적이지 못한 현실에 대한 의문. 신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사와 신부.

이 아이의 사건을 파헤쳐 사실을 보도하려는 신문기자. 조심할 수밖에 없는 말과 행동.

애나를 관찰하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둘의 관계. 친밀해지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

종교적 맹신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사실. 아이의 죽음을 그냥 두고 보는 부모.

어른들의 거대한 공모와 아이의 자발적 의지가 뭉쳐 만들어낸 거대한 사기극.

이런 사실들이 읽으면서 천천히 하나씩 드러나고, 마지막에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까지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일까? 왜 그들은 이런 공모를 벌이는 것일까?


작가의 말에 의하면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많은 서구 국가에서 소녀들이 먹지 않음으로써 유명인이 된 것이 그 소녀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한다.

실제 1869년 간소들의 감시를 받다가 죽은 어린 소녀의 비극적인 이야기도 있다.

이 글을 보면서 조선 시대 열녀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성의 비극사다.

신앙과 믿음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읽으면서 곳곳에 심어 둔 그 시대 그 나라의 감정들.

예를 들면 아일랜드인들의 체념. 어떤 비극이 계속되었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리고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최소 수십 만에서 수백 만의 인구가 죽었던 역사적 사실과 그 원인.

단순히 감자 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 황당한 죽음에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하지만 아주 뛰어난 가독성과 생각할 거리를 잔뜩 던져준다.

리브의 선택과 행동, 애나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 엄마의 편법.

내가 소개글로 예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그곳을 짓누르는 무거움에 속이 답답하다.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한 최선을 길을 찾는 리브. 혼자만의 힘을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와 믿음을 몸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소녀, 그 이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작가는 곳곳에 단서를 깔아 놓고, 신앙과 공포를 엮어 그 시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우리가 믿지 못할 일이라고 하지만 지금도 이것과 비슷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룸>의 그것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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