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고 고결한 밤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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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번역 시집 중 가장 최근 시집이다. 2014년에 나왔다.

처음 읽었던 <야생 붓꽃>보다 조금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두 이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희덕 시인의 해설에 “말년에 이르러 유년 시절의 기억을 반추하며 자전적 에피소드들을 담아낸 작품”이란 설명 나온다.

그 말대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에 대한 회상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형식에서도 이전과 다른 시들이 보인다.

행의 나눔 없이 하나의 긴 문단으로 시 한 편을 적은 것들이 있다.

이런 형식의 시들은 가끔 기존 시 형식보다 더 어렵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 상황에 대한 묘사가 다른 이미지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울한 조수> 같은 시는 읽으면서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이미지의 나열이 아니라 장면과 상황의 묘사가 이야기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시들이 다른 시집보다 훨씬 많다.

서사시처럼 긴 시들도 몇 편 보인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읽어야 한다.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만들고,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이미지가 깨어진다. 어디서 무엇을 놓친 것일까?


<후기>란 시에서 “숙명, 운명, 그 계획과 경고들이 / 이제는 다만 내게는 / 지엽적인 균형으로 보인다, / 거대한 혼란 속 환유적인 싸구려 보석들--- // 내가 본 것은 혼돈이었다 / 내 붓은 얼어붙었고 ---나는 색칠을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거식증과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들이 이 문장을 더 깊이 파고들게 한다.

시인이 본 혼돈 속에 무엇이 있었을까? 쉽게 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돌 속의 그 칼>의 첫 행은 “내 상담 의사가 잠시 쳐다보았다.”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자신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응시한다. 시인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더 이해가 깊어질 것 같다.


이 시집에서 형이라 부르는 존재가 나온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자전적 시라면 맞지 않다. 시의 화자가 본인이 아니란 것일까?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페르소나 같은 존재일까? 화가로서의 삶이 있는 것일까?

다시 정원이 나온다. “끝이 없어. 끝이 없어 – 그것이 / 그녀의 시간 개념이었다” (<여름 정원>부분)라고 말할 때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진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회상과 상실감 등이 그려지는 와중에 말이다.

전작들보다 쉽게 읽히는 시들이 많지만 그 이해의 폭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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