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베르노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평점 :
2006년 출간 시집이다. 같이 번역된 <야생 붓꽃> 다음으로 읽었다.
‘아베르노’는 라틴어로 지옥을 뜻한다.
시인은 책 앞부분에 ‘아베르누스의 옛 이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서쪽으로 십 마일 떨어진 작은 분화 호수’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하지만 시집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은 ‘지옥’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페르세포네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해서 하데스의 아내가 된 것이 아니다. 납치의 결과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납치해 어떤 삶을 살게 했는지는 <헌신의 신화>에 잘 나온다.
이번 시집은 김소연 시인의 작품 해설부터 먼저 읽었다. 적은 분량이지만 인상적이었다.
옮긴이의 말은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어쩌면 집중하지 못한 결과인지 모른다.
해설 등을 읽고 가진 이미지가 시집을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조금씩 깨어졌다.
물론 어떤 해석은 강한 인상으로 나의 시선이 머물게 했다.
“신과의 경기장에서 당신 차례가 온다면, /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페르세포네 그 방랑자> 부분)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 본다. 무신론자인 나에게 의미없는 질문이지만.
이 시집에서 페르세포네와 여성의 삶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읽어야 하는 이야기- / 딸은 다만 고기에 불과한 것.” (<페르세포네 그 방랑자> 부분)
“그녀는 본다 / 같은 사람을, 아직도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는 / 그 끔찍한 딸다움의 꺼풀을.”(<순수의 신화> 부분)
고기에 불과한 딸과 그 끔찍한 딸다움이란 시어가 강하게 서로 울림을 준다.
<프리즘>의 자전적인 시가 다른 시와 이어지면 뒤틀린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불면증에 시달렸던 어린 시절. ‘시달렸다’라는 표현을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하는 그 순간들.
하데스의 사랑은 감각의 둔화다. 어둠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이다.
이 원초적이고 일차원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진실은
“당신은 죽었소. 아무것도 당신을 해칠 수 없소”란 시어에 담겨 있다.
저승의 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죽은 자로 만들어 그 무엇도 해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원색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이 빚어낸 비극이다.
현대로 넘어오면 얼마나 많은 어린 소녀들이 그 페르세포네들이 되었을까?
이전 시집보다 조금 더 쉽게 읽었지만 그 의미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얕다.
김소연의 해설 중에서 “죽음이 비통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가 비통한 것이다.”란 표현에 눈길이 간다.
이 문장을 조용히 음미하다 얼마 전 있었던 이태원의 큰 참사가 떠올랐다.
사고란 단어로 그 죽음을 일상의 하나로 치부하려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를 생각한다.
다음 시집은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