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마니아
김쿠만 지음 / 냉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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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당연하다. 첫 단편집이고 흔한 앤솔로지에서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 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내가 이 단편집을 선택한 이유다. 이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소설 몇 편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조금 낯선 출판사인데 출간한 목록을 보니 낯익은 제목들이 보인다.

많이 편향된 나의 취향이 가끔 이런 작가와 출판사에 눈길에 꽂히는 순간이 있다.

이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 그렇다.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아깝게도 <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은 없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상당히 시니컬하고 복고적이고 어딘가에서 한 번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저질 기억력이 모두를 복원하여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글은 박민규의 초기 글 느낌도 난다.

<라틴화첩기행> 같은 제목은 처음 보자 마자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시리즈가 떠올랐다.

실제 작가의 말에서 김병종의 책 제목에서 빌려 왔다고 말한다.

이런 제목의 차용이나 패러가 다른 단편들에서도 있다. 작가의 말을 참조하거나 단편 끝에 나온다.


이 단편들이 연재된 곳들이 마지막에 나온다. 문예지 에픽, 던전이란 곳인데 모두 모르는 곳이다.

뭐 어떤가! 연재된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소설이 재밌으면 된 것이지.

그 재미의 시작은 첫 단편이자 표제작 <레트로 마니아>를 읽는 순간 부터였다.

이 단편 속에서 다루는 레트로 게임들은 정말 고전적인 게임들이다.

오래 전 오락실에서 한 게임도 있고, 처음 듣는 게임도 있다. 요즘 이런 게임이 앱에 올라와 있다.

하지만 게임기 앞에서 하는 느낌은 아니다. 이 감성과 느낌을 삐딱하게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라틴화첩기행>은 쿠바 미술관 촬영을 간 한 물 간 배우와 다큐 감독의 이야기다.

현실적인 느낌보다 뒤틀리고, 왜곡된 시선으로 가득하다. 아니라고? 그럼 내가 왜곡된 시선을 가졌다.


<천박하고 문제적인 쇼와 프로레스>는 읽으면서 박민규의 느낌을 가장 많이 받은 소설이다.

일본 프로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그 추억에 잠긴다.

읽다 보면 과연 어디까지 사실이고, 허구인지 잘 모르겠다. 정보의 부재가 만든 간극이다.

그리고 실제 이런 틈새 시장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잠시 프로레스의 추억에 잠긴다.

<Roman de La Pistoche>은 작가가 인터넷에서 본 라오스 수영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작은 수영장에 바글거리는 사람들, 여행 잡지에 연재할 내용을 찾는 기자.

작가가 표현한 수영장 풍경과 맞지 않는 상황들, 그리고 낯선 아이의 등장 등이 비현실적이다.

이 상황과 장면을 표현하는 문장들이 삐딱해서 재밌다. 사실 확인은 그냥 넘어가자.


<도무지, 대머리독수리와는 대화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의 무대도 한국이 아니다.

등장인물들도 한국인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복권이 등장한다. 그것도 당첨된 복권이.

이혼한 아내가 자신을 찾아오면 80만 달러를 주겠다는 말에 혹해 간 인적이 아주 드문 동네에 간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나 장면들도 상당히 비현실적이고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 단편의 재미다.

<제임슨의 두 번째 주인>은 대학로 어딘가에 있는 제임슨이라 바를 둘러싼 이야기다.

화자를 제임슨에 데리고 간 인물이 안 교수인데 이 안 교수는 다음 단편들에서도 등장한다.

작가는 자신의 사부라고 하는데 정보가 너무 없다. 안 교수란 인물 때문에 괜히 단편들을 연결해본다.

이 바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나 오는 손님 중에 다른 단편에 나오는 인물이나 상황이 있다.

역시 냉소적이면서 허약한 인간의 모습을 비틀고 있는데 재밌다.


<안주의 맛>은 안 교수를 만나러 동해에 가는 도중에 생긴 일이 주요 이야기다.

문학상을 수상한 후배를 인사동에서 만나고, 그 후배가 당첨된 아파트에서 술을 마신다.

그리고 안 교수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강릉에서 전 여진이자 선배를 만난다.

술을 마시고, 취하고, 주사를 부리고, 질투를 하고, 꽁치 회의 맛을 궁금하게 한다.

옛 소설의 맛이 느껴지는데 역시 그 원전은 정확하지 않다. 동해에 갔지만 동해는 보지 못했다니…ㅎㅎ

쿨투라 신인상 수상작인 <장우산이 드리운 주일>은 짧은 도시 기담처럼 흘러간다.

비가 오면 쓸려고 들고 다니는 장우산과 그를 만나러 간 화자가 잠실 주변을 돌면서 경험하는 것을 다룬다.

어두운 유머와 비틀거리는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그들이 벌이는 특별한 행위에 집중한다.

평범과 기이함 사이를 오가는 하루 동안의 모험이 씁쓸하고 마지막 문자가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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