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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인연 - 외로움이 깊어 인연이 되었던 어느 젊은 날
이은주 지음 / 헤르츠나인 / 2022년 1월
평점 :
이은주 에세이 3부작 중 마지막이다.
앞의 두 권 중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만 읽었다.
얇은 책인데 읽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왠지 모르게 단숨에 읽는 것이 살짝 버거웠다.
젊은 날 괜히 삶의 무게를 짊어지려고 한 나의 과거가 조금 떠올랐다.
이 산문 속 20대 이은주는 내 삶과 비교할 수 없이 열정적이고 치열하고 힘들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할 정도다.
자신이 바라는 공부를 위해 일본에 가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다는 부분에 대한 부러움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그런 고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의 낭만적 환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5부로 나누어져 있다. 그녀에게 큰 도움을 준 4명과 한 명의 남자 친구 이야기다.
타국에서 힘들게 살던 그녀에게 이들은 따뜻한 온기와 열정을 나누어주었다.
지도교사 시미즈 선생님, 헌책방 시바타 아저씨, 프리스쿨의 이노우에 선생님, 우체국의 마리 아줌마.
그녀의 연애 이야기는 사실 별로 나오지 않는다. 간결하다. 감정이 그 사이에 많이 휘발했기 때문일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그 시절 청춘이 경험한 것들이 무겁게 다가온다.
물론 앞에 말한 사람들이 그녀에게 전달해준 위로와 희망과 애정은 잔잔하게 가슴에 파고든다.
오치아이 4조반 다다미방. 공동 화장실. 학업을 따라가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 일상들.
경제적 궁핍은 그녀의 삶을 날카롭게 만든다. 여유가 사라진다.
돌아본 그 시절의 아쉬움과 미안함은 또 어떤가. 누구나 경험하는 일들이지만 나에겐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도스또예프스끼. 한때 이 작가의 책에 얼마나 빠졌던가. 이해하지 못하지만 열심히 읽었던 기억들.
헌책방에서 책 한 권씩 사는 모습을 보고 오래 전 다녔던 헌책방이 생각났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아주 가끔 그곳을 지나가다 보면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산 책들은 지금 어디에 처박혀 있을까? 내가 오랫동안 이사를 못간 이유 중 하나였던 그곳.
번역을 위해 한자사전, 한일사전, 일본어 사전을 펼친 모습이 떠오른다.
한때 영어 공부한다고 억지로 원서를 펴고 읽었던 나의 모습이 살짝 끼어든다.
작가처럼 열심히 했다면 지금쯤 영어 원서를 조금은 편하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읽고 싶은 작가의 소설이 번역되어 나오지 않을 때면 항상 이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 집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그녀의 삶의 질도 떨어진다.
힘겨움 가득하다. 왜 아니겠는가! 알바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이런 삶의 힘겨움이 그녀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로 하여금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 나오게 했을 것이다.
실명이 나온 네 명의 이야기 속에서 겹치는 부분들이 조금 있다.
과거의 기록을 가지고 현재 다시 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기억이 기록으로 바뀌는 순간 그 힘겨움이 조금씩 날아간다.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일제에 참혹하게 당한 한국 역사를 알게 된 사진사의 사죄 부분은 특히 그렇다.
그가 작가에게 사죄한 것은 개인적이지만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사회는 발전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학살을 지적한 부분은 우리 국민들이 정확하게 알고 사죄해야 할 부분이다.
지나간 시절, 소중한 인연, 현재의 삶 등이 잘 엮여 있다.
작가의 새로운 일본 소설 번역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