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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도 초능력이 필요해
민제이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9월
평점 :
텀블벅×리디북스 ‘에디션 제로’ 선정작이다. 무슨 내용인지 몰라 찾아보니 텀블벅은 펀딩을, 리디북스는 전자책 제작과 유통을, 에디션 제로는 초판 이전의 창작자의 이야기를 말한다. 한마디로 신인 창작자 등용문 같은 것이다. 베스트셀러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가장 대표적인 성공작이다. 단순히 재미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이 선정작들도 관심을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실제 해외에서도 전자책 출간 이후 종이책으로 나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이 소개된다. 아마 앞으로 이런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 같다. 장르 소설로 넘어가면 더 흔한 일이지만.
처음 제목과 목차를 보고 한 회사에서 각각 다른 직급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생각했다. 신입, 주임, 과장, 대표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이 구분은 회사원이 거쳐가는 단계들 중 하나일뿐이다. 아! 물론 대표는 회사를 빠르게 창업하면 젊은 나이에도 가능하다. 실제 이 소설 속 대표 최라희도 승진으로 대표가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창업해서 대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낮은 곳에서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일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바로 경험하게 된다. 흔한 말로 왜 이렇게 빨리 급여일은 돌아오는지! 작가는 이 각각의 직급에서 경험하게 되는 문제와 걱정 등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직장인들이라면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신입사원 시절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되었고, 시대도 다르다. 하는 일도 없는 데 왜 그렇게 피곤했는지 모르겠다. 첫 직장이라 너무 긴장한 탓일까? 신입 사원 김가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예전에 들었던 전화 예절이 그대로 나와 놀랐다. 요즘도 그런가 하고. 김가현이 가진 초능력은 선배에게 받은 명함을 찢으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받은 명함은 모두 석 장이다. 제대로 된 OJT도 받지 못했고, 사수는 바쁘고 자신에게 일을 미룬다. 회사 대표는 또 얼마나 진상인가. 그녀가 명함을 믿고 저지른 일 중 하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꾼 행동이다. 현실로 돌아온 신입 사원은 업무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자리를 잡아간다. 마지막에 선배가 들려주는 충고에 고개를 끄덕인다.
주임 이나정은 판교 게임사의 계약직이다. 하루 세끼 사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식비를 아낀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직장인이라면 알지만 주구장창 사내 식당에서 먹는 것을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게임사 직고용 계약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계열사의 파견직이다. 뭐 어떤가! 목에 명찰을 달고 다니면서 직장인임을 뽐낼 수 있는데. 하지만 그녀가 파견나간 8층의 분위기는 사원과 계약직의 구분이 심한 편이다. 일도 힘들지 않고, 손가락 두 개만 놀리면 가능하다. 이런 그녀에게 생긴 초능력은 피곤하면 순간 이동하는 것이다. 피곤한 몸으로 잠깐 졸면 집 침대다. 이 능력이 더 발현해서 이제는 해외도 가능하다. 얼마나 좋은 능력인가! 현실에서 이 능력 중 일부는 회사 분위기 파악에 사용된다.
의류 브랜드의 과장 강다영이 가진 능력은 회사 임직원들의 눈을 마주하면 그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 이전의 팀장이 회사를 떠나면서 물려준 초능력이다. 이 능력으로 그녀는 승승장구했다. 자신의 경력을 착실하게 쌓았다. 이런 그녀를 닮고 싶다는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열악한 업무 환경은 인턴과 신입을 일주일만에 파김치처럼 만든다. 신입 등의 패기와 활기와 열정 등이 사라진 시간이다. 그리고 대표의 나쁜 성희롱 버릇은 또 어떤가. 강 과장은 자신의 경험과 독심술로 신입이 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을 준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초능력이지만 가끔은 삶을 아주 피곤하게 한다. 마지막에 강 팀장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인다.
청년 창업가가 대표 최라희다. 백 만 유튜버인데 화장품 회사를 차렸다. 엄청난 숫자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지만 현실 사업은 이 구독자만으로 부족하다. 물론 구독자의 보기와 광고 수익으로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화장품을 개발해서 런칭하는 것이다. 직원들을 뽑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테스트해야 한다.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는 것은 매월 들어가는 고정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직원들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 신제품이 출시되어 성공하지 않으면 속된 말로 뭐 된다. 만성적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그녀에게 이전 선배가 한 사이트를 알려준다. 구독자 1인당 100원으로 교환이 가능한 곳이다. 대표 최라희의 초능력은 이렇게 제 살 깎아 먹기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회사 문화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음! 희망적이지만 꼰대인 나에겐 재밌지만 현실적으로 글쎄! 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