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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듀나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8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새롭게 개정판이 나왔다. 내용의 변화는 잘 모르겠다. 개정판 작가의 말이 덧붙여진 것 이외 변화는 없어 보인다. 목차도 똑같다. 10주년 기념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막 사서 모으지는 않는다. 새로운 디자인과 활자의 크기 등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인터넷 서점에서 듀나의 목록을 검색해봤다. 읽은 책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장편으로 마지막 읽은 소설이 <민트의 세계>다. 이 장편을 읽고 이전에 읽고 관심을 살짝 내려놓았던 것을 다시 끌어올렸던 것을 기억한다. 이번 단편집은 또 다른 끌어올림이 될 것 같다.
모두 열세 편이 실려 있다. 분량은 모두 제각각이다. 이 단편들 중 두 편은 다른 단편집 <제저벨>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표제작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와 <안개 바다>다. 링커 우주를 다루는데 예상 외의 설정과 잔혹함이 담겨 있다. 특히 표제작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생존 욕구를 극대화한 부분은 너무 담담하게 표현해서 오히려 더 놀랍다. 그리고 이 단편은 링커 우주가 어떻게 지구와 연결되었는지 알려준다. <안개 바다>는 링커 바이러스에 걸린 인류가 우주로 진출해 어떤 한 행성에서 어떤 돌연변이와 진화를 맞이하는지 다양한 사람 등의 시선을 통해 풀어낸다. 이 괴이하고 기이한 세계관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제저벨>이 더 기대된다.
첫 단편 <동전 마술>은 아주 인상적인 도입과 황당한 마무리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떻게 끝부분을 이해해야 할까? <물음표를 머리에 인 남자>의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의 눈에 자신들의 남편이나 남친 등의 머리 위에 생긴 물음표의 의문을 탐구한다. 결론만 보면 고개를 끄덕인다. <메리 고 라운드>의 구성과 전개는 왠지 모르게 나를 어지럽게 했다. 뭐 가장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단편은 다. 이 짧은 단편을 읽으면서 알파벳을 적고 관계도 연결하면서 읽었다. <호텔>은 한 편의 거대한 리얼리티 쇼를 보는 득한 느낌이다. 내용이 아니라 관계를 다루지만 사전 정보가 없었던 나는 이 단편이 <제저벨>과 이어지는 소설인가 하고 착각했다.
<죽음과 세금>은 므두셀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류가 불사가 된 세상을 그린다. 영원한 생이 인류에게 재앙임을 암시하고, 갑자기 죽게 된 사람들을 음모론으로 접근하는 채승우를 관찰하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이다. <소유권>의 세계관에서 말하는 시스템의 존재는 무엇일까? 로봇 아이의 성장과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이 예상 밖이다. 간결한 이야기인 <여우골>도 잔혹한 장면이 나온다. 예상한 결말과 다르다. 우리가 알던 그 무서운 여우가 나타났다. <정원사>는 완벽하게 통제된 우주선 속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데 공포와 함께 인간이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지 말한다.
<성녀, 걷다>는 작가의 말에 의하면 독일제 자동인형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엄청나게 느린 움직임과 그 움직임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보호한 사람들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지막 단편 <디북>은 인류가 뇌파로 움직이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살아가는 현실을 다룬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상 체험 공간을 그대로 구현해 놓았는데 진짜 이야기는 마지막에 나온다. 인류의 종말이 이렇게도 가능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란다. 이렇게 한 편씩 돌아보니 이 단편집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어둡고 생각보다 잔혹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무겁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상당히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아 만족스럽다. 이제 링크 우주로 달려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