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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파스
채영주 지음, 김형중.한수영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평점 :
소설가 故채영주 20주기 기념 선집 중 한 권이다.
어딘가에서 들은 듯한 이름이지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 이력에 나온 장산부 이름으로 낸 <무위록>은 오래 전 본 적이 있다.
이 소설은 생전 1993년에 펴낸 미학사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현재 표기법에 준하여 단어 등을 다듬었다.
그래서인지 읽은 데 그렇게 이질적인 표현이나 문구들이 보이지 않는다.
흑인, 이전 판본에는 아마도 다른 표현일 수도 있는 단어를 아프리카계 미국인 같은 표현으로 바꿨다.
LA를 배경으로 한인과 흑인의 인종 갈등을 다루고 있다.
그 근본에 깔린 것은 백인들의 소수인종 간의 갈등 조작이다.
노조 문제에서 흔히 보게 되는 노노갈등과 닮아 있다. 한번 잘못 설정된 방향은 쉽게 틀어지지 않는다.
느와르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하는데 이야기의 구조는 상당히 간단하고 금방 그 배경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미국 LA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살인과 폭행 등은 지금은 낯설지만 그 당시는 달랐다.
이 소설의 처음 등장하는 인종차별 장면은 실제 존재했던 이야기다.
소설은 유진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폭행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학창 시절 백인 깡패의 수하 되기를 거부하고 홀로 다닌 그가 집단 폭행에 크게 다친다.
이런 그를 구해준 인물은 흑인인 닉이다. 닉의 집에서 며칠 머물면서 몸을 돌본다.
닉의 여동생 샐리는 흑인 음악만 듣는다. 유진이 비틀스 등의 백인 음악을 말하자 반발한다.
이 살벌했던 시절에도 사랑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시절은 그 사랑을 그냥 그대로 두지 않는다. 유진이 LA를 떠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7년이 지나고, 유진의 아버지가 강도의 총을 맞고 죽은 후다.
낯선 듯한 그곳은 이제 어른이 된 이전 친구 등이 살아가고 있다.
누가 아버지를 죽였을까? 아버지 친구는 아버지의 새로운 사업을 말한다. 주류도매업이다.
한인이 죽었는데 CCTV에 녹화된 범인은 흑인처럼 보인다.
흑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치솟는다. 그리고 흑인 부랑자 한 명이 죽는다.
표면적으로 한인이 죽인 것처럼 보인다. 수상한 사건이 이어진다.
아버지의 장례 때문에 LA에 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를 휘두르려고 한다.
흑인 거물이 된 닉을 만나 자신이 떠난 후 이 도시의 정보를 얻는다.
장일산 아저씨마저 총에 맞아 죽으면서 한인의 분노는 더 커진다.
시체 옆에 표시된 검은 별이란 단체는 닉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부분을 읽고 이 소설에 깔린 음모를 알아챘을 것이다.
정밀한 이야기 구조나 반전을 생각하고 읽으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의 한 부분을 날 것처럼 표현한 부분은 눈에 들어온다.
가독성 있는 문장과 뛰어난 장면 묘사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