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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은 얼마 ㅣ 안전가옥 쇼-트 13
하승민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7월
평점 :
안전가옥 쇼-트 13번째 소설이다. 이 시리즈를 띄엄띄엄 읽고 있다. 하승민 작가와 안전가옥과 작업한 두 번째 소설이다. 장편 소설로 먼저 만난 작가라 단편이나 경장편으로 만나면 조금 낯설다. 하지만 그만큼 압축해야 하기에 단숨에 읽는 힘은 더 강하다. 이번 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는 코인이라고 불리는 암호화 화폐다. 한때 주변에서 이 코인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코인에 빠진 사람들은 주식처럼 장이 마감되지 않아 계속해서 쳐다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다 얼마 전 대폭락으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았다. 내가 크게 관심을 가진 분야가 아니라 자세한 것은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 암호화화폐가 얼마 전 큰 문제를 불러왔다는 것은 알고 있다. 누군가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만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신은 돈이 되었다. 기독교나 불교나 기타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예수가 재림하고, 부처가 나타나도 그들을 믿는 종교인들은 부정하고 불편해할 것이란 말까지 나온다. 신자들의 믿음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헌금을 강요하는 모습도 자주 본다. 무신론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돈을 숭배한다. 나도 그 무리 중 한 명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소설 속 29살 정환이 부르짖는 수많은 말들 중 많은 것들이 사실이다. 공정을 외치지만 선별적 공정이 대부분이고, 아니면 부모 찬스를 사용한 일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부자들의 자식은 부모 돈으로 놀고먹고 여행 다닌다. 그들은 힘들게 일한 적도 없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그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알게 모르게 사회 계급이 나누어지고 있다.
정환에게 친구 현기가 찾아온다. 한 사람을 납치해달라고 말한다.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는 그가 할 일이 아니다. 거절한다. 그런데 오래 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비밀 번호를 가지고 산 코인이 있다. 래더코인이다. 이 코인을 가지고 작전을 펼친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유력 대권 후보에게 암호 화폐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가 어떻게 이 래더코인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되었는지 하나씩 말한다. 이렇게 이 소설은 설계자와 피해자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한다. 목차는 얼마나 높은 수익율을 기록했는지 보여준다. 100배나 상승했다. 이 숫자 상 돈이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정환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다. 작가는 그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결말을 알 수 있어 씁쓸했다.
암호 화폐의 가장 큰 문제가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가장 비싼 비트코인의 경우 채굴할 수 있는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새로운 채굴 가능성이 열린다면 어떨까? 암호화 화폐 채굴때문에 컴퓨터 부품의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던 것을 기억한다. 작가는 이런 사소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 정환의 일상을 보여주고, 그 주변에서 그를 유혹하는 친구 현기를 등장시킬 뿐이다. 그리고 그가 짝사랑하는 홀 여직원이 있는데 현기와 그녀 사이에 관계를 잘 보여주는 몇 장면이 나온다. 명확한 선 긋기다. 하지만 그는 자괴감과 패배감에 뒤틀린 상상을 할 뿐이다.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사회와 남탓으로 돌린다. 그가 현기의 유혹에 넘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것은 래더코인의 엄청난 수익률이다.
한 코인이 비정상적인 상승을 한다면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욕망에 이끌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곳에 뛰어든다. 언제 빠져나와야 할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시장을 끌어올린 사람들조차 조심스럽게 물러난다. 이 작업이 단순히 한 무리의 작전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거래소와 정치권의 암묵적 합의와 이익이 결합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읽는 내내 내가 전혀 몰랐던 세계의 이면을 보면서 허탈하고 놀랐다. 이런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고 있는 유력 대권 후보자가 그를 내치기보다 안고 가고자 하는 모습은 암울한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숫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모든 것은 숫자로 환산된다. 내 노력도, 내 노동도, 내 삶도 모두 숫자로 환산이 가능하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몇 시간을 일했는지, 내 삶은 상위 몇 퍼센트에 들어갈 수 있는지 등. 내가 졸업한 대학이나 다니는 회사도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환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물론 그 흔들기에는 현기의 은밀한 압박도 한몫했다. 삶은 우연과 선택이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미래를 만들어내는데 정환은 나쁜 쪽으로 흘러간다.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가 바란 것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몰락은 눈사태처럼 점점 커진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마지막엔 강한 씁쓸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