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 우리가 영화를 애정하는 방법들
김도훈 외 지음 / 푸른숲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도훈, 김미연, 배순탁, 이화정, 주성철 등 다섯 시네필의 영화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한정적이었던 과거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영화 잡지가 그 무엇보다 큰 매출을 자랑하던 시절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과거 이야기와 더불어 현재 영화 방송 <방구석1열>의 PD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얼마나 많은 영화를 놓치고 있는지 알려준다. 실제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본 영화를 제외하면 몇 년 전 조조로 본 <기생충>이 유일하다. 혹시 봤다고 하면 어떤 액션 영화일 텐데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행이라면 가끔 케이블 등에서 나오는 영화를 조금씩 보는 정도다.


가장 낯익은 인물 한 명을 꼽으라고 하면 주성철 기자다. 라디오와 방송으로 가끔 본 탓에 가장 낯익다. 영화를 잘 보지 않으면서 이쪽 분야의 글도 잘 읽지 않으면서 다른 기자들도 낯설다. 음악 평론가는 더 낯설다. 요즘에야 신곡이라도 듣지 2년 전만 해도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다. 한정된 시간 안에 들어야 할 다른 것들이 많다 보니 뒤로 밀렸다. 영화도 책에 밀렸다. 짧은 시간 보는 것은 스포츠에 밀렸다. 오래 전 여행 가서 졸리는 친구를 옆에 두고 영화 이야기를 한참 하던 나의 모습은 지금 완전히 사라졌다. 한때는 얼마나 열심히 청계천 시장을 돌면서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모았던가. 이제 그 테이프들이 모두 짐이다. 귀하게 구한 몇 편도 그냥 정리 차원에서 판 적이 있다. 영화를 너무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생긴 일들 중 하나다.


다섯 명의 시네필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 잡지에 나온 명작들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는 말은 정말 나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평론가들이 말한 작품을 보고 싶어 얼마나 많은 비디오가게를 돌아다녔던가. 일본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하이텔 통신으로 사고, 보고 싶었던 영화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때 비디오 구매 사기도 당했다. 사촌 형을 따라 영화 동아리 등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때 본 영화 한 편이 <살로, 소돔의 120일>이었다. 뭔지도 모른 채 보러 간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처음 일본 영화가 개봉되고 비디오로 나왔을 때 그 유명한 영화들을 보다가 얼마나 졸았던가. 실제 영화관에 가서 정말 많이 졸았다. 비디오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틀어 놓고 잠든 적은 셀 수도 없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영화 팬에게 늘 추천하는 작품이다.


나의 영화 리스트가 멈춘 지 꽤 오래 되었다. 10년은 넘은 것 같다. 비디오 키드 시절 토요일 밤에 비디오를 빌릴 때면 오락용, 묵직한 이야기, 흥행작 등 골고루 3편을 골라서 봤다. 하지만 그때만큼 시간도 없고 열정도 없는 지금은 영화를 본다면 오직 오락용에 치중한다. 감독 이름에, 영화제 수상작에 이끌려 본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얼마나 졸고, 잠들고, 욕을 했던가. 그리고 평론가들의 의견에 휘둘리면서 괜히 할리우드 대작들에 뒤틀린 시각을 가지고 아는 채 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기억과 경험들이 하나씩 튀어 올랐다. 두 편을 같이 보고, 같은 영화를 또 보던 그 시절도.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종로 영화가를 말할 때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섰던 순간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 이야기는 과거 영화에 대부분 머물고 있다. 요즘 감독을 말하면 거의 모른다. 영화를 봐도 제목만 겨우 기억하고, 거의 보지 않으니까. 영화 기자나 평론가를 영화인으로 보지 않아 생기는 일을 이야기할 때 당혹스러웠다. 기자 시사회 풍경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유통에 어쩌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이 기자인데 말이다.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이 영화인이 아니라면 누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읽는 내내 추억 여행을 하고, 내가 놓친 수많은 영화들에 대한 열정이 쪼금 생기고, 잠시 잊고 있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부천까지 전철을 타고 가고, 누구보다 먼저 보기 위해 시사회를 신청했던 그 순간들이 생각났다. 읽는 내내 이 영화 라테 참 맛있게 마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