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볼루션 - 어둠 속의 포식자
맥스 브룩스 지음, 조은아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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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풋 스릴러다. 빅풋의 정의는 위키백과에 의하면 미국, 캐나다의 록키 산맥 일대에서 목격된다는 미확인 동물이다. 사스콰치는 캐나다 서해안 지역 인디언 부족의 언어로 ‘털이 많은 거인’이라고 한다. 현대에 이런 괴인들은 그렇게 큰 공포가 아니지만 갇힌 공간과 총과 같은 무기가 없을 경우 아주 큰 위협이 된다. 작가는 생태주의 마을 그린루프와 레이니어 화산 폭발이란 설정을 통해 갇힌 공간을 만들고, 인간의 자연 동물에 대한 맹신을 비틀어 공포를 자아냈다. 무기로 무장하지 않은 인간들이 얼마나 상위 포식자에게 허약한지, 오랜 세월 다른 종을 멸종시킨 기억에 의한 착각 등을 뒤섞어 아주 참혹한 광경을 만든다.


구성은 간결하다. 그린루프를 처음 들어온 케이트의 일기를 시간순으로 나열하고, 그 사이사이를 전문가의 인터뷰 등을 덧붙여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이 간결한 구성 때문에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지루하고 더디게 이야기가 다가왔다. 최첨단 고급 친환경 공동체인 그린루프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하나씩 보여주기 때문이다. 레이니어 화산이 폭발한 후 그들이 자랑하던 최첨단 시설들은 하나씩 무너진다. 인터넷이 끊어진 환경 속에서 정보는 차단되고, 클라우드를 통한 서비스도 중단된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편리한 시설에 중독된 채 살아가는지 잘 보여준다. 자신들이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도 없다.


친환경 상황에서 태양열 전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이것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개별적으로 둔 것은 현대인의 능력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립된 채 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3D 프린트로 유리 공예를 하는 모스타르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반응을 한다. 각 집에 보관하고 있는 식량의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말한다. 하루 칼로리를 제한해서 최대한 오랜 시간 생존할 수 있게 할 목적이다. 너무나도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온 미국인들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그들이 칼로리를 계산하는 이유는 다이어트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차고를 식량 생산을 위한 밭으로 꾸민다. 물론 이들은 농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다. 책도 없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은 각자의 집만 신경 쓴다. 연대하는 모습은 없다. 케이트의 남편 댄이 태양열 패널의 먼지를 청소하자 그의 노동력 대신 자신들의 식량을 겨우 내놓는다. 그러다 케이트가 밤에 큰 바위 같은 생명체를 발견한다. 모스타르는 덫을 놓아 토끼를 잡아 식량으로 삼는다. 이 모습이 케이트에게는 너무 낯설다. 낯선 환경은 계속 이어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가 보이고, 한때 주변을 맴돌던 크고 작은 동물들이 사라진다. 사스콰치의 존재가 처음으로 잡혔을 때 이 마을 주민들의 대화는 아주 이상적으로 흘러간다. 동물이 자신들을 먼저 공격할 리 없다는 환상을 주장한다. 미지의 그 거대한 존재도 마찬가지다. 빅풋이 타악기를 두드릴 때 인간의 인식으로 그와 똑 같은 박자를 연주한다. 그들과 소통했다는 확신을 가진다. 문화와 환경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인간의 오만이다.


일기 중간중간 삽입된 전문가의 인터뷰 장면 등은 일기 속 상황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한 잘못된 맹신과 인간의 오만한 판단이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간다. 유일하게 생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스타르의 행동을 그냥 바라만 본다. 케이트 부부만 모스타르를 도와줄 뿐이다. 대나무를 깎아 식칼 등을 꽂은 창을 만들고, 함정을 판다. 최소한 할 수 있는 무장을 한다. 인간들의 평화주의가 상대방에겐 호구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망각한다. 퓨마가 어린 아이를 공격하려고 할 때 다른 주민들이 보여준 반응은 너무나도 낙관적이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지 아직 그들은 모른다. 빅풋이 공격했을 때조차도 그들은 무력하기만 했다.


앞부분이 조금 더딘 전개였다면 빅풋과 대결하는 후반부는 정신없이 달린다. 잔혹한 폭력과 생존을 위한 대결은 처참하다. 평화와 공존을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읽는 내내 미국인데 총 한 자루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체격과 힘을 차이가 나는데 이것을 극복할 방법은 인간의 지식을 이용해 무기를 만드는 것이다. 원시 시대 인류가 다른 포식동물들 속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소설 제목인 데볼루션은 권력 이양이란 의미가 있는데 인류의 공격에 의해 깊은 산속으로 숨은 빅풋이 갇힌 사람들을 보고 다시 포식자로 변한다. 다른 유인원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려주는 간단한 정보는 이 마을 사람들이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아준다.


단순히 빅풋과의 대결만 다루는 소설이 아니다. 곳곳에 삽입된 전문가의 인터뷰와 정보 등은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행동을 하는지 보여준다. 평화주의자의 말이 가진 매력에 그냥 넘어갈 때 상대방의 폭력은 더 거세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낙관주의가 불러온 최악의 상황 중 하나가 히틀러를 탄생시켰다.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에 대한 평가는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포식자의 공격에 반격을 가하는 인간들의 곁에는 인류의 기술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도구들이 있다. 이 도구로, 기술로, 전술로 반격을 가하지만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인류가 어떻게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분명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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