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 삶은 하나의 이야기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이은선 옮김 / 늘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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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유명한 한나 아렌트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선택했다. 이 책의 저자가 줄리아 크리스테바란 것도 큰몫을 차지한다. 그녀가 쓴 소설들이 집에 고이 모셔져 있다. 아직 읽지는 않았다. 소설가가 쓴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라면 조금 쉬울 줄 알았다. 나의 큰 오산이다. 200쪽도 되지 않는 분량인데 아주 힘들게 읽었다. 번역이 난해하고, 교정도 그렇게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려운 철학 용어들이 나와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집중력을 조금만 흩트리면 난해한 문장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어떤 대목에서는 그냥 단어만 따라간 곳도 많다.


가끔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 악을 다룬 소설 등에서 항상 인용되는 문장 중 하나다. 이 책에서 악 그 자체와 ‘위반들’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이런 구별이 중요한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경우에 둘을 혼용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는 것보다 의도적인 악을 행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는 부분을 읽고 우리가 얼마나 한쪽으로 매몰된 사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가끔 이런 부분들이 나와 나의 사고의 틀을 깨트리고 확장시킨다. 그리고 제대로 읽지도 못할 한나 아렌트의 저서에 눈길에 준다. 좋은 번역과 높은 집중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책들임을 감안하면 읽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시선을 끄는 문장 중 “사유하는 것과 온전히 살아았다는 것은 동일하며, 이는 곧 사유하는 것을 항상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것을 함축한다.”를 읽고 점점 생각의 힘을 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문장은 나를 일깨워준다. 관성과 타성에 의해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온전히 생각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어떤 대목은 단순 반복일 뿐인 경우도 많다. 이것을 “정치적 삶이 없이는 어떤 삶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 것과 연결하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에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붙이는 작업은 항상 있어 왔다.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사용하는 ‘용서’란 단어를 예수의 언어로 치환하면서 그 의미가 바뀐다. 물론 이 단어의 해석을 보면서 번역이란 과정을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한나 아렌트가 의미한 것의 엄밀한 관련성을 말이다. 오래 전 단어의 미묘한 차이에 관심을 둔 적이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이 부분에 둔감해지고 있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면 잠깐 그때 감각이 살아나지만 일시적이다. 그리고 늘 철학 번역서를 볼 때면 어려운 문장과 난해한 해석 때문에 금방 지친다. 만약 나의 시선을 끄는 이야기들이 없었다면 완독하는데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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