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의 역사 - 시대를 품고 삶을 읊다
존 캐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7월
평점 :
올해도 언제나처럼 생각한 것만큼 시집을 읽지 못하고 있다. 시에 대한 욕심을 내어 보지만 쉽게 손길이 나가지 않는다. 쌓여 있는 시집을 보면서 가끔 한두 편 읽지만 한 권을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혹시 한 권을 다 읽게 되면 다시 시인의 시에서 내가 찾은 것보다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어떤 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이미지도 그려지지 않고,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때면 소리 내어 시를 읽는다. 집중력도 키우고, 내가 놓친 시의 소리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시인들이 운율에 신경을 덜 쓴다고 하지만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나의 작은 이해 방법 중 하나다.
거창한 제목에 먼저 끌렸다. 앞에 말한 시에 대한 관심과 이해 부족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얕은 기대도 있었다. 목차를 보면서 낯익은 시인의 이름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소설가로만 알고 있던 작가들의 이름도 올라와 있었다. 저자는 40개의 꼭지로 시인들을 나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시작해 최근에 알게 된 ‘알젤루’까지 서양의 시인들을 길게 늘어놓는다. 역자는 그 시대 시인들의 시를 번역하면서 원문을 같이 놓아두었는데 솔직히 말해 대부분 그냥 지나갔다. 나의 짧은 영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고어를 그대로 쓴 부분도 보였기 때문이다. 영어의 운율을 잘 모르니 그 묘미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 유럽으로 넘어오면 정말 낯익은 이름들이 보인다. 하지만 모르는 시인들이 더 많다. 워즈워스 이후 시인들은 낯익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일과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 두 사람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바로 괴테와 푸시킨이다. 아주 오래전 허영심에 들뜬 내가 <파우스트>를 그냥 읽은 적이 있었다. 그냥 글자만 읽었다. 당연히 그 매력은 하나도 몰랐다. 푸시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이 이 두 나라의 시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언제 시간되면 집에 있는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정독해보고 싶다. 절판된 푸시킨 전집도 구할 수 있다면 사고 싶다.
윌트 휘트먼과 T. S. 엘리엇은 내가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실패한 시인들이다. <풀잎>을 몇 편 읽고 이해하지 못해 그만 두었고, ‘4월은 잔인한 달’이란 시구 때문에 <황무지>도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었다. 파운드의 시집은 시작도 못했다. 그냥 고히 모셔두고만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전의를 불 태웠다고 하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소설 등을 읽으면서 알게 된 시인들의 이름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그들의 정치적 성향이, 성적 취향 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놀라기도 했다. 예상하지 못한 동성애자들이 많았다. 인종차별주의자도 있지 않았던가. 저자는 시인들의 삶을 간결하게 녹여내고, 시들을 발취해 짧은 이해를 돕는다. 천천히 음미할 때 가슴에 와 닿았다.
휴즈의 시를 극찬하지만 그의 시집은 나의 취향도 맞지 않았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타고르 시에 대한 번역을 걱정하게 만드는 글을 보고 약간 주춤한다. 각 장에서 다루어지는 시인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집중하지 않으면 앞의 시인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생긴다. 생각보다 훨씬 좋은 가독성을 생각하면 높은 집중력은 필수적이다. 방대한 역사를 다루다 보니 한 시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이해가 부족하다. 하지만 대략적인 흐름이나 그 시인의 특징을 간략하게 알아보는 데는 아주 큰 도움을 준다. 읽다가 내가 착각한 시인들이 눈에 들어오고, 겉멋으로 읽었던 시집들을 다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좀더 깊이 읽고 이해하는 독자라면 시의 변화하는 역사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