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하인후 옮김,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한 번 여행을 가보고 싶은 나라가 이탈리아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가야 할 도시들이 너무 많다.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 시치리, 밀라노, 폼페이, 카프리, 피렌체 등 수없이 많다. 이 중에서 메디치 가를 떠올리면 피렌체를 가야 한다. 이탈리아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가문 중 하나가 메디치 가이지 않은가.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이 시기에 태어났고, 메디치 가의 후원을 받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이드 역할을 맡긴 마키아벨리조차도 메디치 가에 잘 보이려고 여러 작품을 쓰지 않았던가. 그리고 읽다 보면 혼란스럽기만 했던 메디치 가의 가계도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아! 물론 이 책은 메디치 가의 역사를 다룬 책은 아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하인후 역자의 도움 요청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인후는 마키아벨리의 마지막 저작인 <피렌체사> 완역본을 출간하고 싶어 저자에게 연락했다. 이 책 속에 나온 <피렌체사> 인용은 그의 번역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두 사람의 협업 속에 가장 빛을 발하는 사람은 마키아벨리다. 저자가 가이드를 맡겨 피레체의 열세 곳을 돌아다닌다. 베키오 다리에서 시작해 루첼라이 정원으로 끝나는 여정 속에는 수많은 권력 투쟁으로 점철된 피렌체의 역사가 곳곳에 녹아 있다. 귀족과 귀족, 귀족과 평민, 평민과 평민, 평민과 하층민, 하층민과 하층민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후 메디치 가를 포함한 가문들의 권력 투쟁이 있었다.


1216년 베키오 다리에서 암살이 일어난다. 귀족 가문 사이의 권력 다툼이다. 귀족 사이의 권력 투쟁은 아직 성장 중인 피렌체에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금화 플로린을 주조하고,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 권력 싸움은 더욱 강해진다. 황제파와 교황파로 나누어져 싸운다. 황제파에 귀족들이 몰려 있다. 교황파가 승리하고, 이것은 다시 백당과 흑당으로 나누어진다. 나중에는 귀족과 평민이 싸운다. 이런 분파와 투쟁의 연속은 제대로 공화정이 성숙하지 못한 피렌체의 문제다. “피렌체에서는 평민이 승리하자 귀족은 정부의 요직에서 철저히 배제당했다.”라고 한다. 이 결과 귀족들은 평민처럼 평민이 되거나 평민처럼 보일 필요가 있었다.


저자는 로마와 이 상황을 비교한다. 귀족의 평민화 과정은 “귀족 안에 있던 관용의 정신과 군사적 미덕은 사라지고 말았고, 결코 한 번도 이것들을 가져본 적 없는 평민의 내면에서 다시 이것들을 살려낼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로마에서 지배하려는 자는 타협할 줄 알았고,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자는 지배하려는 자와 명예를 함께 누리는 법을 알았다.”고 말한 것과 대배된다.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피렌체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결코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의결 기구를 만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세를 불러와 더 큰 문제를 만들기도 했다. 외국인 경비대장 야코포 데 가브리엘리가 횡포를 부리거나 임시 통치자 발테르 공작이 폭압적인 통치를 벌인다. 이런 순간마다 평민과 하층민들이 일어났다.


광장에서 바카가 울리면 평민들이 무장을 하고 모인다는 대목을 보고 자체 군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렌체는 자신들의 군대가 없었다. 군대가 없으면서 생긴 문제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외교의 힘으로, 돈으로 산 용병으로 피렌체를 방어했다. 화려한 피렌체의 역사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무력한 방어 방식이다. 마키아젤리 시절 잠시 군대를 유지했지만 간단하게 무너진다. 자체 군대가 없으면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은 앞에서 말한 가브리엘라나 발테르 공작 이외에도 많다. 저자는 특별히 자체 군대의 존재 여부를 풀어내서 들려주지 않지만 읽다 보면 계속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더 비싼 돈으로 고용한 용병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얼마나 불안한가.


열세 곳의 장소, 그 장소와 엮인 역사가 가이드의 특성에 따라 흘러나온다. 바탕이 되는 참고서는 역시 <피렌체사>다. 중반 이후 메디치 가문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의 삶도 결코 평탄하지 않다. 집에 사 놓은 메디치 가문 책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역사적 관계가 있다. 저자는 2부를 메디치 가문의 시대로 정했지 않은가. 피렌체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놀랍지만 그 자유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생긴 문제들은 보면서 아쉬웠다. 그리고 가이드의 특성 상 예술품이나 건축물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 것도 아쉽다. 읽으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혼란스러운 정보와 지식들이 조금 정리되었고, 피렌체를 다시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도 빨리 번역되어 나오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