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은밀한 감정 - Les émotions cachées des plantes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백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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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공쿠르 수상 작가가 쓴 책이라 선택했다. 가끔 이런 선택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있다. 지금 이 책이 그렇다. 솔직히 말해 재미는 바라지 않았다. 내가 잘 몰랐던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좀 읽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상당한 재미를 누렸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들이 쏟아져 나왔고, 어떤 대목에서는 판타지 소설 속 장면들과 결합했다. 이 책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주장 중 하나가 있다. 식물은 인간 없이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식물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인간이 사라진 공간을 다시 채우는 것은 식물이다. 인간보다 먼저 이 지구에서 살아온 것도 식물이다.


열다섯 장에 나누어 식물의 삶과 감정에 대해 말한다. 과학자들의 끈질긴 연구 결과에 의해 밝혀진 수많은 식물 관련 정보는 대단히 방대하다.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도 있지만 저자가 풀어낸 이야기 속 식물의 삶은 나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사실에 기반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믿기 어려운 것들도 상당히 나온다. 특히 멕시코 농부 호세 카르멘의 놀라운 업적은 내가 알고 있던 농업 지식을 완전히 뒤흔든다. 특별한 비료를 사용하거나 지질이 특별한 곳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데도 그의 농산물은 다른 농산물을 압도한다. 어떻게 보면 마법사처럼 보인다.


식물의 수확량이나 건강을 위해 클래식 음악이 좋다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들었다. 뉴스에도 여러 번 나왔다. 그런데 음악을 이용해 병충해 등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유전자변형 작물이 처음에는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지만 점점 내성이 생긴 병충해에 의해 더 강하고 많은 농약 등을 뿌려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 속 쥐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유전자 조작을 쥐들의 개조를 통해 이겨내는 장면이다. 원래 그 식물 자체가 병충해를 이겨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른 곳에서 낯선 병충해 등이 왔을 때 너무 쉽게 무너진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전적으로 여기에 의존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과학을 뛰어넘는 듯한 이야기는 개인적 체험으로 채워져 있으니 잠시 유보하고 싶다. 하지만 식물이 종의 번식과 안정을 위해 하는 행위들은 충분히 과학적이다. 모습을 바꾸고, 동맹을 만들고, 음모를 꾸미고, 그들의 공포와 고통과 기쁨 등을 전달한다. 또 한곳에 머물지만 다른 매개체를 통해 자신들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번식을 위해 꽃들이 색이나 향기 등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낯익지만 여전히 재밌다. 식물이 느끼는 공포나 슬픔 등의 감정을 보면 판타지 속 외계생물체가 보여준 모습이 전혀 황당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회사에 있는 화분들이다. 사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씩 죽는다. 예전에는 이상한 곰팡이 같은 것이 피었는데 이제는 그냥 마른다. 처음 올 때의 싱싱함이 사무실의 탁한 공기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죽어간다. 쉽지 않다. 읽다 보면 식물의 감정을 풀어내지만 그 시각은 인간의 시각이다. 감정도 인간의 감정으로 해석한다. 인간이 제대로 알 수 없으니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해석이 식물을 이해하고, 우리와의 공생을 위한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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