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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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소설이다. 천천히 읽어야 한다. 먼저 읽은 독자들의 평들 중 잘 읽히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조금 걱정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읽혔다. 실제 다른 장르 소설처럼 빠르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특정 주인공 한 명을 내세워 사건을 따라가는 구성이 아니고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 관계자와 주변인들의 삶을 다양하게 그려낸다. 그 하나의 사건은 폰지사기 사건이다. 실제 모델은 2008년에 버나드 메이도프의 폰지사기이다. 피해액만 650억 달러라고 한다. 엄청난 사건이다. 소설 속 조너선 알카이티스의 실제 모델이 버나드 메이도프다. 조너선은 이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이다.


폰지사기가 최근에 발생한 것이 아님을 작가는 천천히 보여준다.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수익을 배당해주었다. 높은 수익은 투자자들을 모으는데 큰 도움이 된다.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사기 사건은 많다. 하지만 이 피해가 커지기 전에 막을 수도 있었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황까지 올 동안 그 열매를 투자자와 운영사의 일부가 잘 누렸다. 하지만 파국이 왔을 때 그들 모두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평생 모은 돈이 사라졌고, 사기꾼들은 감옥으로 갔다. 이 상황을 작가는 최대한 건조하게 그려낸다. 피해자들을 내세워 그들의 불행을 과장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 사건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폴인 줄 알았다. 폴이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보여주고, 그의 가족들 이야기를 풀어낼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러다 카이에트 호텔로 이야기가 넘어간다. “깨진 유리 조각을 삼켜라’라는 낙서가 호텔 유리창에 에칭펜으로 새겨진다. 범인은 누굴까? 왜 이런 문구를 새겼을까? 폴이 한 일로 의심받고 그는 호텔에서 잘린다. 그리고 호텔에 대한 이야기와 투자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폴의 이복 남매 빈센트는 바텐더로 일하다 이 호텔의 주인인 조너선을 만나 그의 아내가 된다. 법적으로는 그의 아내가 아니지만 조너선이 아내라고 주변에 소개한다. 빈센트는 자신이 잡은 기회와 욕망에 순응한다. 법적 아내가 아니라고 해도 한도 무제한의 카드와 상류층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


빈센트가 조너선의 트로피 와이프로 살아가는 동안의 삶은 아주 풍족하다. 조너선의 이전 아내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파국이 온 순간 그녀의 삶은 예전으로 돌아간다. 집을 떠나고, 힘들게 일하면서 하루 하루 살아간다. 그러다 선박 요리사가 되면서 뭍의 삶을 떠난다. 이런 선택을 하기 전 있었던 장면 하나는 그녀의 자존심을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그녀가 폰지사건 사건을 알게 된 순간 회사에서 벌어진 일들은 혼란, 공포, 은폐, 도망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사기극에 참여한 사람들 중 단 한 명만 외국으로 도망간다. 누군가는 경찰 등에 협력자가 된다. 이 풍경 너머에 피해자 중 일부의 삶이 나온다. 그 중 한 사람인 리언은 다른 사건으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 조너선은 170년 형을 받고 감옥에 갇힌다. 그가 갇힌 곳은 상당히 비폭력적인 감옥이다. 이곳에서 그는 평행우주 같은 가상의 세계를 만든다. 카운터라이프라고 말한다. 이 속에서 그는 환상을 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환각일 수도 있지만 그의 삶과 관련된 사람들이 이 감옥에 나타난다. 죽은 자들의 유령이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투자가 얼마나 의심스러운지 주장한 사람이 나온다. 금융감독에 신고까지 했지만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를 내세워 변론하는 장면은 황당한 일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모든 것을 물타기 한다. 피해자들이 높은 수익으로 얻었던 삶으로 그 몰락을 정당화하는 것은 과한 궤변이다.


사실 이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스테이션 일레븐>이란 SF소설이 먼저 나왔었다. 구해 놓았지만 아직 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번 소설이 주는 무게와 전개 방식이 아주 탁월하다고 해도 요즘 나의 취향이, 집중력이 쉽게 달려가고자 하는 마음을 막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설정과 전개이지만 시간부족과 저질 체력은 늘 주저하게 한다. <글래스 호텔>의 마지막 장면을 읽고 머릿속에서 많은 여운과 장면들이 뒤섞였다. 파편적인 장면들이지만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이다. 잠시 이 소설에 빠져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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