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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하는 여자들
한수옥 외 지음 / 북오션 / 2022년 5월
평점 :
산후우울증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앤솔러지다. 산후우울증의 위험성에 대해 처음 인식한 것은 후배가 자기 친구 이야기를 한 것을 들은 후다. 아이를 낳고 우울증을 앓다가 큰 사고가 났다는 것이었다. 남자로 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모를 철부지 시절 이야기다. 물론 지금도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정도지 그 정도가 얼마인지는 피상적이다. 하지만 그 이후 굉장히 조심하고, 주변 사람에게도 이 우울증에 대해 강조하는 편이다. 이 앤솔로지가 산후우울증을 소재로 한다고 했을 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얼마나 사실적이고, 내가 놓친 부분들이 나올까 하는 기대였다.
이 앤솔로지는 네 명의 여성 작가가 참여했다. 두 작가는 이전에 장편 등으로 만난 적이 있고, 다른 두 명은 이번에 처음 만났다. 개인적인 취향은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한수옥과 김재희다. 다른 두 작가의 경우는 나의 취향과 너무 떨어져 있다. 한수옥의 <과부하>는 맞벌이 부부와 독박육아를 동시에 보여준다. 육아의 힘겨움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진짜 반전은 다른 곳에서 일어난다. 너무 현실적인 상황을 보여줘서 재미는 살짝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설정으로 재미를 확 올린다. 언제부터인가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는데 요즘은 또 분위기가 바뀌는 모양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직원의 ‘엄마 만세’란 말이 떠올랐다.
박소해의 <네메시스>는 영화 <기생충>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는 소설이다. 베이비시터 한 여사가 재벌 집안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그곳에서 32년 전 버린 딸을 만난다는 설정이다. 딸은 히키코모리처럼 아이와 함께 방에 살면서 나오지 않는다. 남편은 그 방에 있는 무언가를 빨리 찾아야 하는 모양이다. 쉽게 생각하면 문짝을 뜯어내면 될 텐데 생각하는 순간 특별한 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점점 한 시터에게 마음을 여는 아이 엄마가 문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때 예상하지 못한 관계와 비밀들이 흘러나온다. 과도한 설정과 전개다. 자신이 엄마라고 밝히는 순간과 그 이후의 모습에 살짝 의문이 들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답은 마지막에 나온다.
한새마의 <Mother Murder Shock>는 세 여성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는 살인자다.’라는 충격적인 도입으로 시작해 혼란과 뒤틀린 욕망과 예상하지 못한 관계를 만난다.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엄마, 돈 많은 남자를 유혹해 편하게 살려는 여자, 끔찍한 시어머니의 반전 등이 차례로 펼쳐진다. 기괴한 상황들이 펼쳐지고, 살짝 의문의 상황을 만든다. 그냥 평범해 보였던 한 가족의 이면을 이렇게도 파헤치고 뒤틀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혜서가 차안에서 겪는 심리적 불안과 공포 등은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작품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 중 한 명 김재희다. <한밤의 아기 울음소리>는 낯설고 힘든 육아로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경험하는 해주와 강동서 여성청소년과 형사 강아정의 어린 시절을 나란히 놓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소설에서 해주의 사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특히 남편의 존재는 불명확하다. 해주가 아이의 좋은 아빠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는 대목과 그 대상이 된 남자들의 놀람이 엮인다. 강아정 형사에게 신고한 남자의 의도도 나중에 새롭게 드러난다. 해주의 심리 묘사보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 더 비중을 둔 부분은 조금 아쉽다. 육아에 지쳐 우는 수많은 엄마들의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다. 남편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작은 행동이, 소소한 관심이,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과 제도의 보완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