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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최후의 날 1 - 2022년 문학나눔 선정도서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15
시아란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평점 :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멸종>에 실린 단편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을 장편 소설화한 결과다. 이때 쓴 글을 보니 장편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감상이 있는데 생각한 것보다 몇 배나 늘어났다. 3권을 합치면 거의 1500쪽에 달한다. 단행본 출간 전에 카카오페이지에 웹소설로 먼저 연재를 했고, 한국SF어워드 웹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단하고, 축하할 일이다. 단편을 장편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생존자들의 분량을 저승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읽으면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더 현실적인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장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요즘 개인적으로 소설이 두 권을 넘어가면 조금 버겁다. 그런데 이 소설은 무려 세 권이다. 단편을 재밌게 읽었다고 이렇게 달려들다니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이런 생각과 달리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빠져들었다. 교통 사고로 죽은 호연과 예슬이 저승에 도착한 그 날 지구는 알두스의 천체 폭발로 발생한 감마선에 의해 순차적으로 대멸종을 겪게 된다. 그 흔한 핵폭발이나 운석 충돌이 아니라 감마선이라니. 다른 sf소설처럼 이런 일에 대한 대비를 했다면 생존을 위한 인류의 노력을 보여줄 텐데 갑작스럽게 이 일이 일어난다. 지구의 자전속도에 맞춰 인류는 강력한 감마선으로 죽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다.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곳에 머문 사람들이다.
시왕저승의 세계에 도달한 영혼들은 평소 이 세계를 믿고 있던 사람들이다. 강하게 다른 종교를 믿은 사람들은 그 종교의 사후세계로 넘어간다. 염라대왕이 사후를 다스리는 이 세계는 망자를 받아 그들이 저지른 이승의 죄에 따라 처벌한다. 쉽게 가려고 했다면 작가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후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면 되지만 작가는 시대의 변화를 저승 속에서 녹여내고 있다. 현대의 문물들이 저승에서도 재현되고, 이승의 철학이나 가치관 등이 조금씩 반영된다. 저승의 최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과 더불어 나의 시선을 가장 끈 부분은 바로 이 바뀐 저승세계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고대의 지옥 대신 작가가 보여준 지옥의 풍경은 그 지옥을 방문한 망자들의 첫 반응처럼 낯설고 거부감이 생기지만 곰곰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갑자기 죽은 자들이 저승에 도착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보여주고, 망자들이 사출산 도산지옥에서 다칠 경우 영혼에 상처를 입고 원귀가 될 수 있다고 한 부분과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역사들을 동원해 칼로 된 나무 등을 모두 제거하는 행동을 한다. 처음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저승이 아니다. 그리고 갑자기 망자들이 늘어난 상황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전쟁이나 재난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승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거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인물이 천문학 박사과정에 있었던 채호연이다. 하나의 과정을 내놓았고, 다른 천문학자들의 의견이 모이고, 이승에서 일어난 정보가 모이면서 사실로 판정된다. 이때 살짝 빌런이 이 모임에 끼어든다. 정상재 교수다.
방송에 나와 인기를 얻은 천문학자 정상재 교수의 첫 등장에서 작가는 살짝 속내를 드러낸다. 방송과 강연 등으로 나열된 문제 등을 요약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날카로운 통찰과 뛰어난 직관력을 보여주는 호연이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지만 이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류의 종말에 대한 것과 함께 그녀가 낸 또 다른 문제는 저승에 사람들이 오게 되는 과정을 들으면서 생긴 것이다. 저승의 기반이 이승의 믿음에 기반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만약 이 저승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의 제목처럼 저승이 최후가 펼쳐진다.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정상재 교수가 보여주는 교묘한 언변과 논리는 박사과정 호연의 감정과 엮이면서 예상 밖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장대한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작가가 설정한 종말의 모습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사고실험은 가능하다. 감마선이 지구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설정 중 일부를 보면서 <삼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작가는 상상력을 우주로 보내기보다 저승의 모습을 최대한 현실의 반영으로 그려내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저승이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이승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도움을 바란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데 전문가로 뽑힌 사람들이 상당히 한정적이다. 의도적인 설정인 듯한데 살짝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너무 많거나 권위적인 인물들이 모인다면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읽고 난 후 마지막 한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왜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기독교 사후 세계에 대한 묘사가 한정적인 것도 조금 아쉽다. 생존자 그룹 중 하나였던 솔개부대 대위 인영이 시왕저승의 사자에게 보여주는 종교적 반응은 살짝 반발감이 생긴다. 오해와 이해 부족이란 단어가 나오지만 그의 반말과 함께 눈에 거슬린다. 독자적 사후세계를 이루고 살아가던 망자들이 나중에 너무 쉽게 이승에 나타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살짝 균형이 깨어진 모습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고 재밌어졌다. 작가는 곳곳에 권위주의를 무너트리는 장면을 넣었다. 현실에 대한 반발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마지막 장면과 더불어 혹시 하는 기대를 품는다. 시왕저승의 최후 이후 다시 만들어지는 시왕저승의 모습을 그린 소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