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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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발표작이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024년부터다.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미래를 설정하고 그려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겨우 2년 남았지만 시간을 조금 더 뒤로 미룬다면 생각할 거리가 많다. 핵 전쟁이나 외계인의 침입 등보다 훨씬 현실적인 설정이란 생각이 든다. 읽다 보면 의문이 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소설 속에서 해결되거나 생략된 것들이다.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국가가 존재하지만 공권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약탈을 저지르고, 경찰이 약탈자처럼 변한 것들이다. 그리고 마약의 부작용으로 태어나면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초공감자들의 존재다.


책을 펼치면 만나게 되는 낯선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지구종’이다. 이 단어를 만들어낸 인물은 바로 주인공이자 기록자인 로런이다. 소설은 로런의 2024년부터 2027년까지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열다섯 살 생일날의 기록으로 시작한다. 일기라고 해서 매일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사건에 따라 각각의 분량도 다르다. 어떻게 보면 그냥 평범했던 소녀가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되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 사이에 그녀의 성장과 고난과 현실에 대한 참혹한 묘사와 설명은 그 단순한 요약 이상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한 듯이 누리고 있는 문명의 혜택이 무너진 후의 삶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생각할 거리를 쉴 새 없이 던져준다.


로런의 아버지는 침례교 목사다. 목사라고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대학에 강의를 나가야 한다. 로런의 엄마가 죽은 후 새로운 여자와 결혼했고, 로런 밑으로 동생이 네 명이나 있다. 어릴 때 로런의 초공감증후군은 아주 심했다. 피까지 흘릴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대상의 고통을 자신도 똑같이 느끼는 증후군인데 옆에 누군가가 없으면 이 무시무시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면 자신도 똑같이 그 고통을 느끼니 상대가 둘만 되어도 목숨이 위험하다. 이야기 도중에 그녀가 명사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누군가가 즉사하지 않으면 그 고통 때문에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목사의 딸이란 설정은 소설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장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자란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장벽을 쌓은 이유도 부랑자나 도둑들이 침입해서 훔치고 약탈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혼자 집을 지키기는 너무나도 무력한 시대다. 기후 변화로 물과 식량이 귀해졌다. 물의 경우 우물이 없다면 사서 먹어야 한다. 비라도 자주 온다면 좋겠지만 비도 거의 오지 않는 환경이다. 삶이 너무나도 힘들다 보니 사람들은 좀더 좋은 환경을 가진 것처럼 알려진 캐나다로 달려간다. 캐나다도 이런 사람들을 막아야 한다. 이 부분은 현재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중남미 사람들과 대비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안전하게 노동을 제공하고 먹고 사는 것이다.


일상의 기록은 혼란의 시대일수록 가치가 있다. 그 시대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로런은 이 시대를 보면서 하나를 깨닫는다. 그것은 세상의 변화다. 절대적인 것이 없다고 믿고, 변화의 힘을 믿는다. 이 부분을 보면서 불교의 ‘무상’이란 개념이 떠올랐는데 나중에 살짝 이 지적도 나온다. 변화는 세상 속에서 그대로 순응하면 그 변화에 휩쓸려 들어가지만 그 변화의 힘을 자신들로부터 시작한다면 어떨까?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공동과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생존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튼튼한 것처럼 보였던 장벽이 무너지고, 아버지의 생존을 알 수 없는 현실이 일어난다. 이런 가능성을 늘 대비했지만 그 충격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한다.


황폐해진 환경 속에 사람들의 삶은 각자도생이 된다. 부모가 자식을 팔고, 새로운 노예 제도가 생긴다. 거대 기업들은 자본의 힘으로 시대를 뒤로 돌린다. 야생 개들이 길에서 죽은 사람들을 먹고 산다. 그런데 장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 개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미 다른 곳에서 식인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개를 인간의 친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아직 그런 허기를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국가가 존재하고, 바닷물을 담수화해서 보급 가능하고, 우주선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시대이지만 눈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야만의 풍경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생각이 문명과 야만의 충동이란 판타지로 빠진다.


이 우화 시리즈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겨우 반이 지났다. 소설 곳곳에 깔아 둔 몇 가지 이야기들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새로운 대통령의 등장이나 대기업의 공격적 식민화나 인종 차별 등의 문제 등이다. 살짝 보여준 캐나다 국경 지역의 설명도 더 필요하다. 다음 이야기에서 어디까지 나올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유민들을 조직해서 기업 등을 공격하는 인물이 나오지 않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는데 국가가 군대를 동원해 진압했다는 내용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아직 완전히 국가 권력이 해체된 것이 아니다. 경찰이 시민을 약탈해도 문제가 없는 시대라는 것도 무섭다. 지구종의 씨앗이 어디까지 뿌려지고 싹을 틔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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